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야기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하면 보석 여왕, 남성 편력 등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얼굴 큰 엘리자베스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가뜩이나 큰 얼굴을 더욱 크게 헤어를 부풀리는 것도 한몫하는 데 왜그런지는 모르겠다. 20세기 유행했던 스타일이었나 보다.
21세기는 작은 얼굴이 미의 기준이 된 시대이다. 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인 중에는 유독 얼굴이 큰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비율보다 얼굴을 더 중시하던 시대여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중에서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세기를 대표한 미의 표본이자 얼굴 큰 대표적 미인이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화려하면서 팔자 드센 여배우의 정석 같은 삶을 보여준 그녀는 비록 학교는 제대로 다닌 적이 없어도 신이 내린 두뇌와 미모를 가지고 태어나 세상을 평정하고 사라졌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그림실력은 물론 달필에 못하는 것이 없는 재주꾼이었고 태어난 순간부터 고귀한 것을 볼 줄 아는 안목 또한 탁월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녀가 유일하게 못한 것은 남자 보는 눈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들은 그녀보다 더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조금 섬뜩하기도 하다.
백설공주처럼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생각하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백설 공주의 실제 모델은 따로 있다고 해도 그녀의 외모와 일곱 명의 남편이 마치 성인 버전의 동화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남다른 사생활로도 유명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나 평생 가난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태생에 어울리게 평생 보석을 사랑한 컬렉터로도 유명했다.
어쩌면 클레오파트라의 환생좌?
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는 1932년 2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의사는 그녀더러 속눈썹이 두 줄 겹으로 자라는 돌연변이라고 하였다. 이는 인구 5% 미만의 매우 희귀한 유전적 질환 중 하나인데 인간에게는 드물지만 개나 고양이에게는 적잖게 볼 수 있는 질환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그녀는 매우 독특한 바이올렛 빛 눈동자 색을 지녔다. 아마도 전생에 신비한 동물이었거나 동물로 태어나려다 인간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사람들은 그녀의 눈동자와 아름다운 얼굴에 집중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더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비율을 중시하다 보니 얼굴 큰게 거슬리나 보다.

어쩌면 고대 이집트의 화려함이 오버랩되는 클레오파트라의 환생좌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 만큼 클레오파트라 이미지를 완벽하게 각인시킨 배우도 없어 보인다.
놀랍게도 그녀는 태어난 후 8일 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그녀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엄마 손에 끼워진 아름다운 보석 반지였고 이후로 그녀는 평생 보석을 사랑해 왔다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보통은 태어나자마자 빛의 밝기 정도만 구분하는 것으로 아는데, 아무래도 보석이 반짝였을테니 그리로 시선이 간 건 아닌가 싶다.
그녀 부모는 미국인 출신으로 아버지는 미술중개상이었고 어머니는 배우 출신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분인지 그녀는 신이 내린 외모에 남다른 감각을 타고났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가난을 모르고 살았다. 전생이 정말로 궁금할 정도다.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의 성인 키는 157센티미터였다. 그녀는 서양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비율이 좋은 편이 아니다. 얼굴 큰 엘리자베스는 요즘 데뷔했다면 절대 성공 못했을 비주얼이다.
그렇게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 발레를 배웠지만 지속하진 못했다. 굳이 현란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얼굴 하나만으로 충분히 부와 명성을 누릴 조건이 충족된 것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얼굴이 발레 하기에 너무 커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아이 시절이라고는 해도 그녀는 얼굴이 너무 컸고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성인이 되어서도 크기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노사연이나 송가인처럼 상체는 비대하고 하체는 빈약한 전형적인 태양인 체질이 아닌가 싶다.
얼굴 큰 엘리자베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를 대표한 전형적인 얼굴 미인형이었다. 그녀와 징글징글하게 사랑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배우 리처드 버튼도 그녀의 몸매가 별로지만 눈을 보면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한 말이 이해가 간다.
필연적인 배우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엘리자베스 가족은 재빠르게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다. 덕분에 할리우드 입성이 수월해졌다. 게다가 10살 때부터 이미 조숙한 완성형 얼굴이 되어 12살 때도 성인 연기가 가능했으며 이미 400만 달러를 넘게 버는 대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보통은 너무 일찍 외모가 꽃을 피우면 역변 수순으로 가는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날이 갈수록 외모에 원숙미를 더해갔다. 그러니까 한번도 동안이었던 적은 없으면서 평생 아름다움을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아직 성인이 되기 전부터 그녀를 알거나 한 번이라도 본 남자들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을 냈다. 그중에서 당대 소문난 바람둥이 억만 장자 하워드 휴즈는 44살이나 되었으면서 겨우 17세 남짓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을 냈다. 그는 그녀 엄마에게 백만 달러 상당의 뇌물까지 줬다는 후문이 돌 정도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18세가 되자 힐튼 호텔 창업주 2세인 콘라드 힐튼 2세와 결혼했다. 선남선녀의 만남이었고 그는 바로 패리스 힐튼의 증조부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문에는 두 사람이 신혼여행 때부터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였는데 서로 너무 잘났다고 생각해서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 콘라드 힐튼은 그녀의 가식을 싫어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의 잘난척을 싫어했다.
결혼병에 걸린 엘리자베스 테일러
첫 번째 결혼 이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후 결혼병에 걸렸다. 그녀가 원치 않아도 그녀의 이혼 소식만 들리면 번호표를 뽑아야 할 정도로 남자가 줄을 섰으니 혼자 살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부의 되물림은 유형 자산뿐만 아니라 의식으로도 유전이 되는가 보다. 그녀는 남편을 고르는데 나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재력을 우선 순위로 두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두 번째 남편은 그녀보다 스무 살 연상의 배우 마이클 와일딩이었다. 그녀는 그와 5년 동안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녀의 열정을 감당하기에는 매력이 없는 캐릭터였다. 그녀는 남편의 지루한 성격에 만족을 못하고 영화 자이언트에서 만난 상대 배우 제임스 딘과 사랑에 빠졌다.
항간에는 제임스 딘이 게이라느니 약혼녀가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정작 동성애자는 그녀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몽고메리 클리프트였고 제임스 딘은 여자를 좋아한 상남자였다. 제임스 딘이 어릴 때 악기와 발레를 배웠다고 그를 게이로 몰아가곤 하는데 그것은 엄마가 가르친 것이지 제임스 딘이 원했다고 볼 수도 없다. 양성애자까지는 이해해도 동성애는 인정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제임스 딘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사랑을 했든 안 했든 그녀에게 제임스 딘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당시 그와 함께 찍은 사진들만 봐도 단순한 친밀감을 넘어 정서적 교감이 가득 차 보인다. 특히 제임스 딘 쪽으로 머리를 대고 곤히 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녀가 표지로 나온 잡지를 읽고 있는 제임스 딘 모습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녀만 닿으면 불행해지는 남자들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만난 그녀의 두 남자들은 잇달은 불행을 겪어야 했다. 1956년 라이징 스타 제임스 딘이 자동차 폭주로 사망한 지 1년 만에 그녀 집에서 파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몽고메리 클리프트도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그의 빠진 치아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직접 손으로 빼내어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를 역사상 가장 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만들어 버렸다. 참고로 제임스 딘보다도 얼굴 큰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일그러진 얼굴은 성형으로도 회복이 쉽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지만 45세 이후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녀 주변에 불행이 겹치자 심적으로 혼란했던 그녀는 1957년 마이클 와일딩과도 이혼하였고 역시나 유부남 신분에도 번호표 뽑고 기다린 23살 연상의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가 온갖 선물 공세며 구애로 그녀와의 결혼에 당첨이 되었다.
남자가 그리 지극정성으로 사랑해 주니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비로소 안식을 찾은 듯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럭키 리즈라고 쓰여있는 그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다 사망하였다. 둘의 결혼 기간은 1년 남짓이었지만 워낙 황망한 사고였기에 그녀는 너무 슬퍼했고 대중은 그녀를 동정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희대의 불륜녀로 등극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죽은 남편의 친구이기도 했던 가수이자 배우 에디 피셔와 불륜을 저지르고 말았다. 게다가 에디 피셔의 아내 배우 레널즈는 엘리자베스와도 절친으로 평소 넷이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났던 사이였건만 난데없이 둘이 눈이 맞아 버린 거다. 세상 사람들이 그녀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욕을 했지만 절망에 가득차 눈에 뵈는 게 없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거야. 혼자 자라는 거야?
그녀와 에디 피셔와의 결혼 생활은 약 5년 정도 유지되었다. 이 남자는 세상 지질하기로 유명한 데다 세기의 미인을 얻고도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이혼의 결정적 사유가 되었음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물론 엑스 와이프 레널즈 흉까지 보고 다녀 나중에 여자끼리는 화해를 하고 친한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드디어 만난 진정한 사랑
그리고 비로소 엘리자베스 테일러 인생 찐사랑이 나타났다. 그녀는 1963년 라이징 스타 리처드 버튼과 함께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으면서 격렬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입장에서는 진정한 사랑 혹은 불장난 같은 것일 수 있었겠으나 리처드 버튼 입장에서는 파멸의 급행열차를 탄 것과 마찬가지로 호사다마 폭탄을 제대로 맞았다. 가난한 집안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자수성가한 엘리트 배우 리처드 버튼은 두 딸을 낳고 15년째 성실하게 잘 살고 있었다.
출생부터 흑수저와 다이아몬드 수저의 만남에 배우로서의 커리어, 심지어 정치색도 달라 모든 게 리처드 버튼 입장에서 엘리자베스는 천하의 속물 취급하며 외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두 겹의 속눈썹 사이에 쌓인 보랏빛 커다란 눈동자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고 말았다. 영화 스케일 및 스토리가 워낙 강렬해서 둘이 사랑에 안 빠지는 것도 힘든 일이긴 했지만 신이 완벽하게 리처드 버튼을 시험에 들게 하였고 결국 그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리처드 버튼은 그녀를 만나는 것이 파멸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영화 작업을 끝내고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자살 소동을 벌인 통에 그녀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구나, 하면서 감동받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지옥행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리처드 버튼은 태생적으로 몰락의 기질을 물려받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사치의 기질을 지닌 터에 둘은 열심히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그러한 가운데 화해할 때마다 리처드는 그녀에게 값비싼 보석을 선물했고 둘의 사치와 향락은 리처드 버튼의 파산을 가속화했다. 그리고 리처드의 재산이 바닥난 것을 눈치챈 것인지 리처드가 더는 캐 줄 광물이 없다고 백기를 든 것인지 결혼 십 년 만에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명언을 남기고 이혼하였다.
그러나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헤어진 지 1년 반 만에 다시 만나 그냥 살지 결혼식까지 올려가며 관종 짓을 하였다. 둘은 그렇게 재결합을 하였으나 리처드 버튼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알코올 중독 습관을 고치지 못했고 결국 둘은 다시 9개월 만에 헤어졌다. 이후 리처드는 분장사 샐리 헤이즈와 재혼하였는데 다음 해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엘리자베스의 7번째 남편
1976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7번째 남편은 해군 장교 출신 존 워너였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후광으로 공화당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5선까지 지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살도 찌고 관리도 안 해서 미모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명성과 보석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했다. 그와 결혼한 지 7년째 되는 어느 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느닷없이 정치인 뒷바라지 하는 것도 신물이 난다면서 헤어졌고 1991년 그녀는 약물 치료를 받기 위해 재활원에 들어갔다.
재활원에서 만난 마지막 남자

그런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재활원에서도 남자를 만나는 타고난 능력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스무 살 어린 남자라고 해도 약물 중독 치료소에서 만난, 그것도 공구리치는 막노동자를 만난 것은 그냥 노망에 가까워 보인다. 늙고 병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엉치뼈마저 다쳐 몸져누웠고 이래저래 병시중만 들고 있자니 게으른 천성의 공구리 래리의 불만이 늘자 엘리자베스는 가서 공구리나 치라고 꺼져버리라고 몇 푼 쥐어주고 내쫓아 버렸다. 이후 엘리자베스는 각종 수술 등으로 심신이 편할 날이 없었는데 그 망나니 같은 공구리 남편은 그녀가 아픈 와중에도 돈을 빌리러 왔었다고 한다.
노인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도 안 아픈데 없이 골골하다가 2011년 7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