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과 이방원 이야기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게임 <워크래프트>의 아서스만 이 대사를 읊조린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는 위대한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 인정받지 못한 설움을 칼날로 바꾼 ‘위험한 아들들’이 존재했다.
서양의 성경 역사(History)에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Absalom)이 있었고, 동양의 조선 역사에는 태조의 아들 이방원(Yi Bang-won)이 있었다.
압살롬과 이방원 이야기 중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닮은 ‘평행이론’을 달리고 있다. 둘 다 형제를 죽였고, 아버지를 왕좌에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결말은 극과 극이었다. 한 사람은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비참하게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남아 조선 500년의 기틀을 다졌다. 무엇이 이 두 ‘패륜아’의 운명을 갈랐을까?
1. 정의의 공백이 낳은 괴물들
압살롬과 이방원 이야기,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압살롬과 이방원을 폭주하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들의 ‘침묵’과 ‘실책’이었다.
성경 사무엘하 13장, 압살롬의 누이 다말이 이복형 암논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 아버지 다윗은 “심히 노하기만” 할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의가 실종된 그 2년의 침묵 동안, 압살롬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결국 그는 형을 살해한다.
조선의 이방원 역시 비슷했다. 그는 고려를 무너뜨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나, 아버지 이성계와 정도전은 막내아들(방석)을 세자로 앉혔다. 자신의 공로와 존재가 부정당했을 때, 이방원 역시 칼을 들었다. ‘제1차 왕자의 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아들 모두 시작은 “아버지가 하지 않으니 내가 한다”는 비뚤어진 정의감과 권력욕이었다.
1.1. 이방원의 집권 과정
[발단] 소외된 건국 공신
-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가장 큰 공을 세웠으나, 아버지 이성계와 정도전은 막내 이복동생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함.
- 정도전이 사병 혁파를 시도하며 이방원의 손발을 묶으려 함.
[전개] 제1차 왕자의 난 (1398년)
- 이방원은 선제공격을 감행. 정도전과 남은 등 반대파 세력을 기습하여 살해.
- 세자 이방석과 그의 형 이방번(이복동생들)을 모두 살해함.
- 곧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둘째 형 **이방과(정종)**를 왕으로 추대하여 명분을 쌓음.
[절정]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
- 넷째 형 이방간이 박포와 손잡고 난을 일으키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형을 유배 보냄.
- 이 사건으로 일인자의 위치를 확고히 함.
[결말] 왕위 즉위 (태종)
- 형 정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제3대 국왕 태종으로 즉위.
-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해 외척과 공신들을 대거 숙청하며 강력한 군주권을 확립.
1.2. 압살롬의 쿠데타 과정
[발단] 복수와 유배
- 이복형 암논이 누이 다말을 강간하자, 2년 후 암논을 살해하고 외갓집 그술로 망명(3년).
- 요압의 중재로 예루살렘에 귀환했으나, 다윗이 2년간 얼굴을 보지 않고 방치함 (부자 관계의 단절).
[전개] 치밀한 포퓰리즘 (4년)
- 왕궁 출입이 허용된 후, 성문 길가에 서서 재판받으러 오는 백성들을 가로챔.
- “왕은 너희 말을 안 들어준다. 내가 정의를 베풀겠다”며 친한 척 스킨십(입맞춤)을 시도. 성경은 이를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훔쳤다(15:6)”고 기록.
[절정] 헤브론 거사 선언
- 4년 뒤, 다윗에게 “서원을 갚겠다”며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출생지이자 정치적 고향인 헤브론으로 내려감.
- 나팔 소리를 신호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며 반란군을 규합. 다윗의 책사 아히도벨까지 포섭함.
[결말] 3일 천하와 비참한 최후
- 다윗은 허를 찔려 급히 피신. 압살롬은 예루살렘 무혈입성 후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함.
-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을 추격하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다가(후새의 계략), 전열을 정비한 다윗 군대(요압)에게 패배.
- 도망치다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살해당함.
2. 관종(Attention Seeker)과 킬러(Killer)의 차이
압살롬과 이방원 이야기, 그러나 권력을 향해가는 방식에서 둘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압살롬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셀럽형 정치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려한 외모와 풍성한 머리털을 자랑했고, 화려한 전차를 타고 다니며 백성들의 눈을 현혹했다.
2년 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도, 요압 장군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질러” 관심을 끄는 극단적인 쇼맨십을 보여주었다. 그는 본질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나르시시스트였다.
반면 이방원은 철저한 ‘현실주의 킬러’였다. 그는 쇼를 하지 않았다. 대신 명단을 만들고 제거했다.
정도전을 베고,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훗날 왕이 되어서는 자신을 도운 처남들과 공신들까지 숙청했다.
압살롬이 “나를 바라봐 달라”고 소리칠 때, 이방원은 “나를 방해하는 자는 벤다”며 침묵 속에 칼을 휘둘렀다.
3. 허영심이 부른 몰락, 시스템이 낳은 태평성대
압살롬의 최후는 상징적이다. 반란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을 추격하여 끝내라는 책사의 말을 무시하고 화려한 대군을 모으는 허세를 부린다.
결국 전투 중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공중에 매달렸고, 그 상태로 요압의 창에 찔려 죽는다.
그의 허영심(Vanity)이 문자 그대로 그의 발목(아니, 머리)을 잡은 것이다.
그가 남긴 것은 숲속의 돌무더기 무덤과, 아버지 다윗의 처절한 울음소리뿐이었다.
압살롬과 이방원 이야기 중 이방원은 달랐다. 그는 아버지 이성계의 “함흥차사”라는 분노를 견뎌내며 왕권을 지켰다.
비록 손에 피를 묻혔으나, 그는 그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 아들 세종대왕(King Sejong)이라는 꽃을 피워냈다.
성공한 쿠데타와 실패한 반란 사이
사무엘하 14-15장의 압살롬은 ‘사랑받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아이’의 투정 섞인 복수극처럼 보인다. 그는 대중의 마음(Heart)을 훔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권력의 무게를 감당할 냉혹한 이성(Head)은 없었다.
이방원은 사랑받기를 포기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는 아버지를 이겼고, 형제를 이겼고, 끝내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역사는 묻는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밭에 불을 지른 아들과, 나라를 세우기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 아들. 누가 더 끔찍한 괴물인가? 아니, 과연 누가 더 ‘준비된 왕’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