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갓과 유럽 중세 시대 모자의 같거나 다르거나

고깔모자와 갓 이야기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옷이 정치적 선언이었던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1895년 조선, 고종 황제가 단발령을 내렸을 때, 백성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고깔모자와 갓 이야기

한국인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유교적 효(孝)와 성년의 정체성을 대변했다.

이 저항의 물결 속에서, 몇 년 후인 1900년, 고종은 더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바로 서양식 양복을 관복으로 채택하고, 자신은 실크 모자를 쓴 채 신하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실크 모자’는 황제가 근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상징이었으며, 전통적인 갓 문화가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 서양 문물이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근대 복식사는 황제의 결단으로 급진적인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서양의 중세 시대와 맞물려 트렌드가 비슷해졌다. 유럽 여성들의 고깔 모자와 조선 남성들의 갓의 연관성을 찾아 보았다.

1. 중첩된 시간: 15세기의 동서양, 모자로 말하다

고깔모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종의 시대보다 수백 년 전인 15세기, 즉 조선의 기틀이 다져지던 시기와 유럽의 중세 후기가 겹치는 지점으로 향한다. 이 지리적으로 먼 두 사회에 흥미로운 공통 현상이 있었다.

바로 ‘과장된 모자’를 통한 신분 과시였다. 고깔모자와 갓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 서양의 고깔모자: 유럽 귀족 여성들은 그 높이가 한두 자에 달하는 고깔모자(에넹)를 썼다. 흑사병 이후 상업이 발달하며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자, 전통 귀족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실용성은 전혀 없는 이 화려하고 비싼 모자를 유행시켰다. 이는 세속적 부와 유행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 조선의 갓: 동시대 조선의 양반 남성들은 을 썼다. 갓의 형태는 엄격한 유교적 규범을 따랐으며, 이들은 갓을 통해 도덕적 우월성과 성년 남성의 예의를 완성하려 했다. 이는 단순히 멋이 아니라, 유교적 질서와 정체성을 완성하는 의무였다.

2.개연성의 연결 고리: 불안정 속의 ‘경계 짓기’ 심리

고깔모자와 갓 이야기 중 왜 다른 두 문화권에서 비슷한 시기에 복식 과시가 극단적으로 나타났을까?

개연성은 바로 사회 구조의 불안정지배층의 심리에 있다.

15세기 유럽에서는 봉건 질서가 붕괴되고 신흥 부자들이 등장하면서 ‘돈’이 신분을 위협했다.

이에 전통 귀족들은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경계를 긋기 위해 모자와 복식에 사치를 부렸다.

한편 조선에서는 유교 이념을 통해 신분 질서를 공고히 하려 했고, 양반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사회적 우월성을 갓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천명해야 했다.

이처럼 지배층은 체제가 흔들리거나 정립될 때, 눈에 가장 잘 띄는 복식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권을 시각적으로 방어하고 확립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고깔모자와 갓이라는 서로 다른 형태의 모자가 동시대에 탄생한 심리학적 배경이자, 인류 보편적인 권력 과시의 방식이었다.

3.근대화의 파도와 복식의 종말 (1900년대)

1900년대 조선의 갓은 결국 황제의 실크 모자로 인해 그 상징성을 잃어갔다.

유교적 질서의 상징이었던 갓은 근대화와 함께 서양의 중절모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조선의 복식 경쟁은 ‘예의’에서 ‘효율과 근대’로 그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수백 년간 지속되었던 모자의 나라 한국의 복식 문화는,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층이 이용했던 ‘신분 과시’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근대 문명의 파도 속으로 편입되며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4.수직과 수평으로 드러낸 본성

고깔모자와 갓 이야기 중 중세 유럽 귀족 여성들과 조선 양반 남자들의 본성적 과시 욕구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구현이 되었다.

동서양 복식에서 수직과 수평이라는 상이한 형태로 발현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4.1. 조선 양반 남성의 갓

조선 양반 남성의 은 넓고 평평한 수평적 면적을 과장함으로써 권위와 신분을 표출했다.

  • 본성적 욕구:영역 확보와 위엄
    • 넓은 챙(양태)은 착용자의 얼굴을 가리고, 주변 공간에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설정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는 고전적인 권력자가 타인과 거리를 두어 위엄을 유지하고, 자신의 사회적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하려는 본능을 반영한다.
    • 이는 개인의 신체를 강조하기보다는, 유교적 예의라는 추상적인 가치와 결합하여 정신적 우월성을 영역화하려는 심리로 해석된다. 즉, ‘나의 예의와 지위는 이만큼의 공간적 위엄을 갖는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4.2. 유럽 여성의 수직적 과장

중세 유럽 귀족 여성의 고깔모자(에넹)는 하늘로 솟구치는 수직적 높이를 과장함으로써 주목과 지위를 표출했다.

  • 본성적 욕구:관심 집중과 신체적 확장
    • 높은 원뿔 형태는 착용자의 키를 비현실적으로 확장하여 군중 속에서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이는 시선을 위로 끌어올려 존재감을 극대화하고, 경쟁 사회에서 시각적 우위를 점하려는 본능을 반영한다.
    • 이는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직결되어, ‘나는 가장 높은 계층에 속하며, 그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호소했다. 모자의 높이는 곧 가문의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지표였다.

5.동상이몽의 복식 심리

고깔모자와 갓 이야기 중 갓과 에넹은 모두 ‘나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실용성을 희생하고 형태를 극단적으로 과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갓이 수평적 영역 확보를 통해 유교적 질서를 굳건히 하려 했다면, 에넹은 수직적 높이 경쟁을 통해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부를 극대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동상이몽의 복식 심리를 보여준다.

6. 비일상적 과장이라는 공통 코드

고깔모자와 갓은 유럽 여성 패션의 극단적인 유행조선 남성 유교 윤리의 엄격한 규범이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유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복식 모두 일상적인 실용성을 포기하고, 시각적으로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형태를 취함으로써 착용자의 계층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인류 보편의 신분 과시 심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두 모자는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크기, 높이, 면적을 극대화하는 ‘과장’이라는 공통된 시각적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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