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의 역사
1.돼지기름에서 K-뷰티의 역설까지: 한국 화장사(史)의 명암과 진화
한국의 화장의 역사 이에 관해서 논할 때 우리는 종종 화려한 왕실의 치장이나 현대의 세련된 K-뷰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마주하게 된다.
역사서에 기록된 한반도 동북방 읍루인(고대 숙신족)의 모습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땅을 파고 그 안에서 생활하며 대소변을 해결했던 그들의 거친 삶 속에서 화장의 시초가 발견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들은 혹독한 추위와 동상을 막기 위해 얼굴에 돼지기름을 발랐다.
이는 미적 추구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방한용’이었으나 피부 보호와 보습이라는 화장의 기본 명제와 맞닿아 있기에 한국 화장의 원류로 꼽힌다.
실제로 돼지기름은 인간의 피지 구조와 유사하여 훗날 유럽에서도 크림의 원료로 쓰였으니 그들의 지혜는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2.삼국시대와 고려: 영혼을 닦고 향기를 입다
생존의 단계를 넘어선 화장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계급과 미의식의 표현으로 진화했다.
가라인(변한인)들이 조개껍데기로 치장하고 단군 신화 속 쑥과 마늘이 미백을 향한 염원을 상징했듯 흰 피부에 대한 열망은 유구하다.
고구려의 강인함과 달리 백제인들은 엷고 은은한 화장법을 구사했다.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에도 백제의 화장 기술이 전파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그들의 기술은 자연스럽고 세련되었다.
반면 신라는 화랑들이 영혼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보다 더 요란하게 분을 바르고 잇꽃으로 연지를 찍었다. 이는 화장이 단순한 치장을 넘어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했음을 시사한다.
문명이 개화한 고려 시대에 이르러 화장은 청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목욕이 대중화되었고 평민들은 팥과 녹두를 비누처럼 사용했다.
고려의 여인들은 ‘비분대장(非粉大粧)’이라 하여 분은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않는 옅은 화장을 즐겼으나 기생들은 분대 화장으로 화려함을 뽐냈다.
이때 버드나무처럼 가느다란 눈썹을 그리는 미의 기준이 확립되었고 향료 문화가 발달하며 향기 또한 화장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3.조선: 내면의 미와 백색의 욕망 사이
한국 화장의 역사 중 유교적 이념이 지배한 조선 시대는 화장 문화의 암흑기이자 역설적인 발전기였다.
부덕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화려한 치장을 금기시했고 병자호란 이후의 보수성은 여성을 더욱 규방 안으로 가두었다. 그러나 억압은 오히려 디테일의 발전을 가져왔다.
여염집 여인들은 복숭앗빛 뺨과 옥같이 흰 살결을 추구하며 맑은 화장을 고수했고 이는 짙은 화장을 하는 기생과 명확히 구분되는 계급의 표식이 되었다.
당시 사용된 연분(납 성분)은 부착력이 좋고 피부를 하얗게 만들었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위해 납중독의 위험까지 감수했던 당시 여인들의 욕망은 현대의 성형 열풍과도 묘하게 겹쳐 보인다.
4.근대와 개화기: 박가분의 비극과 신여성의 등장

개화기의 물결과 함께 1916년(등록 1922년) 등장한 박가분은 한국 최초의 관허 화장품으로 하루 5만 갑이 팔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납 성분 부작용으로 물의를 빚으며 몰락했고 그 자리를 수입 백분과 크림이 채웠다.
종로 화신백화점에 최초의 미장원을 연 오엽주는 일본 유학파다운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아랫입술에만 붉은 루즈를 바르고 눈썹을 초승달처럼 그리는 그의 화장법은 신여성과 기생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며 서양식 화장의 도입을 알렸다.
4.격동의 현대사: 컬러의 폭발과 트로이카 시대
한국 화장의 역사 광복과 전쟁을 거쳐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한국 화장품 산업은 다시 기지개를 켰다.
미디어의 보급은 화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흑백 TV 시절을 지나 1980년대 컬러 TV의 등장은 색조 화장의 폭발적인 수요를 불러왔다.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으로 대표되는 여배우 트로이카와 브룩 실즈 같은 서양 미녀들에 열광한 대중은 입체적인 메이크업을 갈망했다.
아이홀을 깊게 파고 콧대를 세우는 서양식 화장이 유행했으나 당시 국산 제품의 품질은 그 열망을 따라가지 못해 외제 화장품 선호 현상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5.90년대와 밀레니엄: 자연스러움이라는 고도의 테크닉
1990년대는 질적 성장의 시기였다. 심은하, 이영애 등 청순한 이미지의 스타들이 등장하며 화장은 덜어냄의 미학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는 화장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처럼 보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 고현정의 광고 카피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는 클렌징과 기초 케어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며 화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여기에 바비 브라운 등 해외 아티스트 브랜드가 유입되며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 즉 ‘물광 메이크업’이나 ‘생얼 메이크업’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여성들은 이제 색조보다 피부 본연의 건강함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6.K-뷰티의 역설: 획일화된 개성과 본질로의 회귀
오늘날 한국의 화장품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K-뷰티는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페미니즘과 탈코르셋 운동의 영향으로 화장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동시에 미디어 속 아이돌의 영향으로 화장 시작 연령은 초등학생까지 낮아졌다.
길거리에서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다니는 모습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함인지 혹은 준비 과정조차 패션으로 소비하는 현상인지 모호하다.
또한 10대들 사이에서는 하얀 피부와 붉은 틴트, 기괴할 정도로 진한 셰이딩(컨투어링)이 유행하며 본래의 개성을 가리는 획일화된 스타일이 나타나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마스크 속에 얼굴을 감추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얼굴 화장보다 바디 프로필이나 문신 등 신체 자체를 가꾸는 것으로 미의 관점이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읍루인이 돼지기름을 바르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는 존재한다. 희고 결이 고운 피부에 대한 한국인의 유별난 집착과 사랑이다.
이는 시대와 도구가 변해도 영원히 지속될 한국 화장사의 핵심 DN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