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죽음을 피하는 기괴한 방법 수니미티즘 이야기

인류의 역사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영도(零度)에 저항하기 위해 타인의 온기를 찬탈해온 거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열왕기상 1장의 첫머리에서 묘사된 노왕 다윗의 오한은 단순히 한 노인의 질병이 아니라, 한 시대의 동력이 소멸해가는 정치적 상징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수니미티즘(Shunammitism)’은 그 이름이 성경의 인물 아비삭의 고향인 ‘수넴(Shunem)’에서 유래했으나, 그 뿌리와 줄기는 인류 문명 전반을 관통하며 기괴한 연대기를 형성해왔다.

1.수니미티즘의 모든 것

수니미티즘 이야기

2.수니미티즘의 기원: ‘근원적 열기(Innate Heat)’라는 신화

수니미티즘의 사상적 기원은 고대 의학의 핵심 이론인 ‘근원적 열기(Calor Nativus)’에 맞닿아 있다.

고대 근동과 그리스의 의학자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 일정량의 생명 열기를 부여받으며, 노화란 이 열기가 점차 식어 수분이 마르고 신체가 차가워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죽음은 열기의 완전한 소멸이다.

따라서 꺼져가는 불꽃을 되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로부터 ‘신선한 열기’를 수혈받는 것이었다.

열왕기상 1장 1절에서 4절에 등장하는 아비삭은 단순한 시녀가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열기를 보유한 ‘인체 연료’로서 투입된 것이다.

다윗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샅샅이 뒤져 최상급의 열기를 지닌 처녀를 구했고, 그녀를 왕의 품에 뉘어 ‘전도(Conduction)’의 방식으로 왕의 생명을 연장하려 했다. 이것이 수니미티즘의 의학적 시초이자 기원이다.


3.잔혹한 연대기: 고대 궁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실험실까지

수니미티즘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이름만 바꾼 채 반복되어 왔다.

그 연대기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생물학적 약탈을 정당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3.1. 채음보양과 방중술(기원전 2세기~현재)

중국 도교의 방중술은 수니미티즘의 동양적 발현이다.

채음보양

한나라 이후 황실과 사대부 사이에서 유행한 ‘채음보양’은 젊은 여성의 기(氣)와 정(精)을 흡수하여 남성의 양기를 보충한다는 논리다.

이는 다윗의 사례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이들에게 젊은 육체는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정제된 ‘에너지 소모품’에 불과했다.

3.2. 보에르하베의 처방(1700년대)

헤르만 보헤르하베

놀랍게도 수니미티즘은 계몽주의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현대 임상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르만 보에르하베(Herman Boerhaave)는 실제로 노쇠한 환자들에게 젊고 건강한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 온기를 나눌 것을 처방했다.

이는 신비주의를 벗겨내고 ‘체온 전도’라는 물리적 효과에 집중한 수니미티즘의 근대적 계승이었다.

3.3. 제프리 앱스타인과 트랜스 휴머니즘(2000년대~2010년대)

제프리 앱스타인 사건은 수니미티즘이 현대의 자본 및 기술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기괴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키고 젊은 육체들로부터 활력을 추출하려 했던 현대판 ‘아비삭 사냥꾼’이었다.

이는 죽음을 기술적으로 극복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뒤틀린 욕망과 궤를 같이하며, 초엘리트 계층이 여전히 타인의 생명력을 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3.4.파라바이오시스(Parabiosis) (현재)

오늘날 수니미티즘은 ‘젊은 피의 수혈’이라는 과학적 외피를 입었다.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혈관을 연결해 회춘 효과를 증명한 파라바이오시스 실험은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 다윗이 아비삭의 품에서 얻고자 했던 ‘열기’는 이제 혈장 속의 ‘GDF11’과 같은 단백질과 줄기세포로 치환되었다.


4.식지 않는 탐욕의 불꽃

수니미티즘의 연대기는 결국 권력자가 마주하는 ‘필멸성’에 대한 공포의 역사다.

열왕기상 1장의 다윗은 아비삭의 온기를 빌렸음에도 결국 다시 뜨거워지지 못했다. 성경이 기록한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는 문장은 수니미티즘의 의학적, 정치적 실패를 선언하는 사형선고다.

타인의 젊음을 찬탈하여 자신의 시간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고대 예루살렘의 침실에서도, 현대의 최첨단 실험실에서도 결코 죽음이라는 절대적 냉기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다.

수니미티즘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이기적인 치료법이자, 권력의 정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거울이다.

다윗의 식어버린 육체는 아비삭의 젊음으로도 채울 수 없었으며, 그 빈자리는 이제 따뜻한 이불이 아닌 차가운 칼날을 쥔 후계자들의 쟁탈전으로 채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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