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를 통찰한 세 작가 이야기 웰스, 발저,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하버트 조지 웰스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인류의 사고방식을 뒤흔든 인물이다. 그는 과학적 가설을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이라는 장르의 기틀을 닦았다.
1. 하버트 조지 웰스에 관하여
인류의 미래를 통찰한 세 작가 이야기 중 하버트 조지 웰스는 현대 SF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힌다.
그가 집필한 《타임머신》에서 독자가 실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는 이유는 웰스 특유의 ‘과학적 사실주의’ 문체 덕분이다.
그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단 하나만 설정하고 그 외의 모든 배경과 물리적 법칙을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여 서술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허구의 설정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하며, 관찰자의 시선에서 건조하고 정밀하게 묘사된 문장은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2. 하버트 조지 웰스의 생애와 죽음
인류의 미래를 통찰한 세 작가 이야기 중 하버트 조지 웰스(H.G. Wells)는 1866년 영국 켄트주의 빈곤한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상점을 운영하다 파산했고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해야 했으며, 웰스 본인도 어린 시절 포목상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고된 육체노동과 극심한 빈곤을 경험했다.
이 시기의 억압적이고 우울한 기억은 훗날 그의 작품 전반에 깊게 깔린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의 뿌리가 되었다.
2.1. 독학을 멈추지 않은 작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독학을 멈추지 않은 그는 장학금을 받고 런던의 정상과학학교(Normal School of Science)에 진학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찰스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의 지도를 받으며 진화론과 동물학을 깊이 수학했다.
세상을 생물학적 진화와 거시적인 문명의 흐름으로 바라보는 그의 독보적인 시각은 바로 이때 완성되었다.
교사 생활을 거쳐 전업 작가로 나선 그는 1895년 《타임머신》을 발표하며 현대 과학 소설(SF)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을 열어젖혔고, 연이어 《투명인간》, 《우주 전쟁》 등을 성공시키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중장년기에 접어들며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문명 비평가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페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해 점진적인 사회 개혁을 주장했고, 인류가 과학과 이성을 통해 더 나은 유토피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참상을 연이어 목격하면서 그의 희망은 철저히 부서졌다.
과학 기술이 인류를 구원하는 대신 서로를 학살하는 무기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본 웰스는 극심한 환멸에 빠졌다.
결국 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깊은 비관과 절망을 안은 채, 1946년 런던에서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2.2. 빈곤한 하위 계급 출신 작가 로버트 발저
일면 하층민으로 태어나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친 로버트 발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인류의 미래를 통찰한 세 작가 이야기 중 로베르트 발저는 1878년 스위스의 다자녀 가정에서 태어났다.
웰스와 마찬가지로 집안의 경제적 몰락 때문에 일찍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14세부터 은행 서기, 보험사 직원, 발명가 조수 등 수많은 말단 직업을 전전했다.
가장 결정적인 생애적 특징은 그가 1905년 베를린에서 실제로 ‘하인 양성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고, 귀족 가문의 하인으로 일했다는 사실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철저히 이 시기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는 문단에서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점차 주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변방을 택했다.
평생 독신으로 가난하게 살며 수많은 거처를 떠돌았고, 만년에는 정신 분열 증세로 요양원에 수용되어 무려 23년 동안 글쓰기를 중단한 채 침묵 속에 살았다.
그리고 1956년 크리스마스 날, 요양원 근처의 눈밭을 홀로 산책하다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며 생을 마감했다.
2.4. 웰스와 발저의 세계관 비교
두 작가는 ‘빈곤한 하위 계급 출신’이라는 교집합을 가졌지만, 그 억압을 문학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극단적인 대척점에 서 있다.
상처를 대하는 태도: 거시적 비판 vs 미시적 침잠
웰스는 포목상 견습생 시절의 모멸감을 동력 삼아 세상을 뜯어고치려는 개혁가로 성장했다.
과학과 교육을 무기 삼아 지식인 계층으로 신분 상승을 이뤄냈고,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며 문명의 구조적 모순을 거시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발저는 세상과 싸우는 대신 스스로 작아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성공이나 권력을 혐오했으며, “나는 둥글고 영점(Zero)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고 선언했다.
그는 하인이라는 복종의 위치에서 오히려 철저한 자유와 평온을 발견하는 역설적인 심연을 파고들었다.
미래의 우주 vs 일상의 산책
웰스의 시선은 항상 바깥을 향해 있었다.
그는 80만 년 후의 미래(《타임머신》), 외계 생명체(《우주 전쟁》), 사회 구조의 진화 등 거대 담론과 인류의 향방을 논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발저의 시선은 철저히 자신의 발밑을 향했다.
그의 문학은 눈송이, 산책길의 풍경, 빵 한 조각 등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일상에 머물렀다.
세계를 구원하려는 거창한 이데올로기 대신, 보이지 않는 변두리의 삶을 투명하고 섬세한 언어로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삶의 결말: 지식인의 절망 vs 잊힌 자의 고요
웰스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유명 인사로 살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자신이 믿었던 인간의 이성과 과학에 배신당한 채 참담하고 절망적인 말년을 보냈다.
발저는 요양원에서 세상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잊힌 채 살아갔으나, 오히려 그 고립 속에서 평온을 찾았다.
눈밭에 쓰러져 죽은 그의 마지막 모습은, 평생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고요히 사라지고자 했던 그의 문학적 세계관이 완성된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3.근대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가 낳은 소외
두 작가는 근대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가 낳은 소외를 다루는 두 가지 완벽한 원형을 보여준다.
웰스가 억압적인 체제를 부수기 위해 거대한 논리와 사상을 구축한 ‘설계자’였다면, 발저는 그 거대한 체제 속에서 티끌처럼 작아짐으로써 체제의 무게를 무화시켜 버린 ‘산책자’였다.
프란츠 카프카가 발저의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의 문학에 영향을 받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웰스는 신분상승으로 발악하다 절망적인 마무리를 한 셈이고 발저는 시도조차 않고 체념으로 절망적인 삶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하버트 조지 웰스는 개인적인 신분 상승보다는 견습생이라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당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자리 잡으며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개인의 한계가 아닌 이념의 붕괴였다. 그의 붕괴는 개인의 신념과 인류에 대한 믿음의 파괴로 참담하게 무너진 것이고 로베르트 발저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아니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욕망의 덧없음을 미리 간파하고 고독하게 죽어간 것으로 보인다.
4. 하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리뷰

이 소설이 단순한 공상을 넘어 실제 탐험기처럼 느껴지는 첫 번째 근거는 ‘액자식 구성’과 ‘논리적 과학 논증’의 결합에 있다.
소설의 도입부는 미지의 시공간이 아니라, 런던의 평범한 응접실에서 의사, 심리학자, 언론인 등 당대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시가를 피우며 모여 있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풍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인 시간 여행자는 이 지식인들 앞에서 시간을 ‘제4의 차원’으로 정의하며 기하학과 물리학을 동원해 건조하고 논리적인 강연을 펼친다.
이는 허황된 마법이 아니라 지식인들조차 쉽게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가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독자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의심의 장벽을 초반에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것이다.
4.1. 웰스 법칙와 생물학적 필연성
두 번째 근거는 웰스 문학의 핵심 기술인 ‘웰스 법칙(Wells’s Law)’의 철저한 적용이다.
웰스는 시간 여행이라는 단 하나의 비현실적인 전제를 던져놓은 뒤, 그 외의 모든 감각적 경험과 물리적 반응은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기계의 레버를 당길 때 밀려오는 지독한 현기증, 태양과 달이 하늘을 미친 듯이 가로지르는 시각적 공포, 기계가 급정거했을 때 땅바닥에 처박히는 물리적인 충격 등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감각적 사실성을 부여한다.
환상적인 수식어를 배제하고 관찰자의 철저한 1인칭 시점에서 미지의 세계를 정밀하게 기록하는 이 문체는 독자를 완벽한 현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마지막이자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미래 사회를 구축한 ‘생물학적 필연성’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80만 년 후의 인류, 즉 아름답지만 무기력한 엘로이와 지하에서 기계를 돌리며 식인 풍습을 갖게 된 흉측한 몰록은 단순한 판타지 괴물이 아니다.
이는 19세기 영국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자본가-노동자의 계급 구조가 수십만 년 동안 생물학적으로 진화하고 퇴화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섬뜩하고도 논리적인 결과물이다.
현실 사회의 모순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완벽하게 연역해 낸 이 구조적 정합성 때문에, 독자는 이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언젠가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인류의 서늘한 ‘미래 르포르타주’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5.올더스 헉슬리의 생애에 관하여
올더스 헉슬리는 앞선 두 작가완 다르게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국의 저명한 과학 및 문학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도는 19세기 영국 지성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맹렬히 방어하여 ‘다윈의 불독’이라 불린 당대 최고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다.
앞선 대화에서 하버트 조지 웰스에게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르친 스승이 바로 이 인물이다.
즉, 웰스의 지적 아버지가 올더스 헉슬리의 친할아버지인 셈이다.
이 기묘한 인연은 훗날 헉슬리가 웰스의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안티테제를 쓰게 되는 문학사적 촌극의 바탕이 된다.
또한, 헉슬리의 아버지는 저명한 작가이자 편집자였고, 형인 줄리언 헉슬리는 훗날 유네스코(UNESCO)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였다.
헉슬리 역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의사나 생물학자가 될 운명이었다.
5.1. 절망이 만들어 낸 방향 전환
헉슬리의 삶에 첫 번째 거대한 균열이 찾아온 것은 16세 때였다.
그는 각막염이라는 중증 안질환을 앓고 거의 2년 동안 맹인에 가까운 상태로 지내야 했다.
이 치명적인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그는 실험실의 현미경을 들여다봐야 하는 생물학자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지 못했다.
시력은 점차 회복되었지만 평생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고, 결국 그는 형체 없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해부하는 ‘문학’으로 방향을 틀어 옥스퍼드 대학 영문과에 진학하게 된다.
5.2. 멋진 신세계의 탄생과 포드주의의 충격
1920년대에 냉소적이고 지적인 풍자 소설들로 문단의 주목을 받던 그는, 1930년대 초 미국을 여행하며 일생일대의 지적 충격을 받는다.
그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과 미국 특유의 거대한 소비주의, 쾌락 지향적인 대중문화를 목격했다.
인간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처럼 규격화되고, 오직 말초적인 소비와 오락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환멸을 느꼈다.
이 충격에 웰스식의 ‘과학적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1932년 《멋진 신세계》가 탄생했다.
그는 이 책에서 헨리 포드를 신으로 추앙하고, 아기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며, 우울할 때는 ‘소마(Soma)’라는 마약을 삼키는 기괴한 미래를 통해 인간성이 완벽하게 증발한 세계를 경고했다.
중장년기에 접어들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헉슬리는 놀라운 사상적 변화를 겪는다.
초기작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이성과 냉소주의를 버리고 동양 철학과 힌두교의 베단타 사상, 그리고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물질문명에 절망한 그는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이성이 아닌 ‘초월적 영성’에서 찾으려 했다.
급기야 메스칼린(Mescaline)과 LSD 같은 환각제를 직접 투여하는 실험에 자원했다.
그는 마약이 주는 환각이 뇌의 통제를 벗어나 우주적 진리에 다가가는 문을 열어준다고 믿었으며, 이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은 훗날 1960년대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 록 밴드 ‘도어스(The Doors)’의 탄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5.3. 가장 기이한 죽음
헉슬리의 마지막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고 상징적이었다.
1963년 11월 22일, 후두암으로 투병하던 그는 임종 직전 아내에게 종이에 글씨를 적어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LSD, 100 마이크로그램, 근육 주사.” 그는 환각의 상태에서 매우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망한 바로 그날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이었고, 또한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가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
거대한 정치적 비극에 묻혀 그의 죽음은 당시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올더스 헉슬리는 인류를 통제하는 거대한 기계의 작동 원리를 가장 먼저 간파한 날카로운 지식인이었으나, 끝내 그 기계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환각과 신비주의라는 극단적인 문을 열고 나간 기인이기도 하다.
6.타임머신에 반기를 들고 탄생한 작품 신세계 스토리
두 미래 사회의 인류는 물리적인 폭력이나 억압이 아니라 쾌락과 무지에 의해 통제당한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철저한 감시와 고문으로 대중을 억압한다면, 웰스와 헉슬리의 세계는 안락함이 인간의 이성을 어떻게 거세하는지 보여준다.
《타임머신》의 지상 인류인 엘로이는 가혹한 노동에서 해방되었으나, 그 대가로 지적 능력과 투쟁심을 잃고 하루 종일 꽃을 꺾고 놀며 가축처럼 길러진다.
《멋진 신세계》의 시민들 역시 국가가 무제한으로 배급하는 ‘소마(Soma)’라는 마약과 끝없는 유흥에 취해 스스로 생각하거나 분노할 능력을 상실한다.
안락함이 곧 정신적 파멸로 이어진다는 구조적 진단을 두 작가는 함께 내린 것이다.
6.1. 헉슬리의 웰스를 향한 안티테제
흥미로운 연관성은 문학사적인 사상적 충돌에 있다.
《멋진 신세계》는 사실 웰스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저격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웰스는 《타임머신》 등 초기작에서는 비관적인 미래를 그렸지만, 만년으로 갈수록 과학 기술과 이성이 인류를 완벽하고 합리적인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졌다.
그는 그런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소설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헉슬리는 바로 이 웰스의 ‘과학적 낙관주의’를 조롱하고 경고하기 위해 《멋진 신세계》를 집필했다.
과학 기술이 질병과 가난을 없애고 완벽한 안정을 가져다줄지라도, 그 대가로 인간의 눈물, 예술, 자유의지, 치열한 고뇌가 소멸한다면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끔찍한 지옥임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멋진 신세계》는 《타임머신》이 던진 ‘계급의 양극화’라는 화두를 훌륭하게 물려받으면서도, 동시에 웰스의 ‘과학 만능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탄생한 철학적 쌍둥이이자 대척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