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랄 힙스터의 시작:감옥 문화가 만든 역설적 미학

1.루랄 힙스터의 탄생과 문화적 전유의 복잡한 정치학

루랄 스타일로 대표되는 길모어 걸스의 루크 캐릭터와 루랄의 남자로 불리는 매튜 매코너히

미국 남부의 남성성을 상징하던 루랄 남성성(Rural masculinity)는 단순 시골에서 사는 남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 강인함, 노동을 통한 자기 증명에 가까운 기반으로 아주 가부장적인 남성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스타일을 바로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차용하면서 역으로 루랄 힙스터라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2.철창 너머로 스며든 루랄 힙스터 미학

감옥 문화가 패션에 미친 영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10년내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이 현상은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반항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완성된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직관적인 예가 헤어스타일이다. 미드 속 감옥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짧고 단정한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조합은 감옥 규정의 산물이다. 머리길이는 엄격히 규제하되 수염은 상대적으로 자율에 맡기는 감옥 내 규칙이 만들어낸 우연한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 기이한 조합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면서 오히려 남성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스타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바버 스타일이 바로 그것이다. 측면과 뒷머리를 짧게 깎고 윗머리만 남긴 언더컷에 풍성한 수염을 조합하는 스타일의 원형이 감옥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의외이면서도 흥미롭다. 여기에 타투까지 더해지면 완벽한 ‘프리즌 시크’가 완성된다. 제약에서 태어난 스타일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하나의 패션 코드로 자리 잡은 역설적 현상인 셈이다.

3.죄수복에서 유니폼까지

미국 프로 야구선수의 수염을 잔뜩 기른 모습과 팔의 문신 그리고 오렌지 죄수복을 입은 수염 기른 남성 이미지 비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복장에서 나타난다. 오렌지 점프수트, 화이트 티셔츠, 블루 데님 이러한 미국식 감옥의 표준 복장이 이제는 ‘미니멀 시크’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태도의 변화다. 힙스터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감옥 문화 특유의 ‘절제된 남성성’이다. 과시하지 않지만 강인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존재감 말이다. 사실 이들이 이런 스타일이 미국 감옥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긴 한다. 교도소는 극단적으로 남성적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허용된 수염은 성숙함, 위협 그리고 야성적 남성성을 의미하기에 길러대는 거다. 짧은 머리와 긴 수염의 조합은 나는 비록 여기에 갇혀 질서에 순응하지만 여전히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존재라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4.루랄 힙스터의 탄생

여기서 흥미로운 역류 현상이 나타난다. 도시의 힙스터들이 농촌으로 이주하면서 감옥 문화에서 차용한 미학을 시골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루랄 힙스터’다.

버몬트의 한 유기농 농장에서 만난 전직 그래픽 디자이너는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 화이트 헨리넥 티셔츠, 로 데님, 워크 부츠. 그는 “선택의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감옥에서처럼 정해진 루틴, 정해진 복장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자유롭다는 것이다.

5.죄수 문화를 매개로 한 힙스터 문화의 역류

루랄 힙스터 스타일로 보이는 죄수

5.1. 타투의 유행

루랄 힙스터들의 몸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특징은 ‘프리즌 스타일’ 타투다. 정교한 기계가 아닌 수제 도구로 새긴 듯한 투박한 선, 의미를 숨긴 암호 같은 기호들이 이들의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교도소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히트치고 이들이 고증을 통해서 구현했던 죄수 스타일은 교도소 밖에서, 그리고 미디어 밖의 세상으로 퍼져 나가면서 서브컬쳐의 이미지 코드로 채택된, 역문화적 흐름을 탔다.

손가락에 ‘LOVE’와 ‘HATE’를 새기는 등의 이러한 현상은 영화 <나이트 오브 더 헌터>에서 따온 이 클래식한 모티프였으며 이제 루랄 힙스터들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5.2. 스포츠 선수들

미국 메이저리그와 스포츠 안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은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야구 선수들 특히 텍사스 레인저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같은 남부 팀 소속 선수들 사이에서 이러한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그런 스타일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팀 내 분위기나 코치, 구단주의 가치관이 반영되기도 한다. 반면 뉴욕 양키스는 수염을 금지하고 있다.

6.음식 문화도 죄수 스타일로

패션에 이어 음식 문화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군대식 음식에 이어 유튜브가 발달하니 출소한 사람들이 에피소드로 감방 음식을 선보였는데 미국은 아예 감옥의 ‘치토스 캐서롤’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들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등장하고 있다. 제한된 재료로 만들어내는 창의적 요리법, 인스턴트 라면을 활용한 퓨전 요리 등이 새로운 ‘컨스트레인트 쿠킹(제약 요리)’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7.루랄 힙스터들이 차용한 감옥 시간과 노동의 재정의

루랄 힙스터들이 감옥 문화에서 차용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태도다. 감옥에서의 시간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다. 제한된 환경에서 최대한의 성취를 만들어내는 철학이 이들의 새로운 가치관이 되었다.

오리건의 한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는 전직 금융인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정해진 루틴을 반복한다. “감옥에서처럼 시간을 구조화하니까 오히려 창조적인 에너지가 더 풍부해졌다”고 그는 말한다.

8.루랄로 뭉친 공동체 그리고 고립의 변증법

감옥은 역설적으로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동체적인 공간이다. 루랄 힙스터들도 이런 양면성을 추구한다. 물리적으로는 고립된 농촌에 살면서도, 온라인과 소규모 커뮤니티를 통해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커뮤니티는 감옥의 ‘코드’를 닮아있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이해하는 규칙들, 침묵 속에서도 통하는 소통 방식들이 그것이다.

9.루랄 힙스터들의 디지털 디톡스와 아날로그 회귀

루랄 힙스터들에게 감옥 문화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디톡스’에 있다. 감옥에서는 기술이 제한되고,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진짜 삶’과 맞아떨어진다. 방탈출 게임이라던가 감방처럼 설정한 술집 등 이런 것이 자유를 넘어 방종한 삶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자발적 규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10. 특권층의 빈곤 체험과 닮은

하지만 이 모든 현상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실제 수감 경험이 없는 특권층이 감옥 문화를 ‘체험’하고 ‘소비’한다는 점이다. 진짜 감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인 것이 이들에게는 트렌드가 된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파버티 투어리즘(빈곤 관광)’의 연장선으로 본다. 고통을 미학화하고, 절망을 로맨틱하게 포장하는 위험한 시도라는 것이다. 오래전 서울 시장이 도시 재생 사업을 한다며 빈민촌을 관광지로 만들어 현지에 사는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하였는데, 현재 지방 소도시 관광지로 뜨고 있는 지역은 여전히 이런 동물원 원숭이 모드가 되어 어디다 항의도 못하고 푸념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11.루랄 힙스터 미래의 전망

죄수 문화를 매개로 한 루랄 힙스터 현상은 단순한 패션 트렌드를 넘어 현대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낸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제약을 갈망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절제를 추구하는 역설적 욕망 말이다.

이 현상이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현대인의 깊은 갈망—진정성, 공동체, 의미 있는 노동, 구조화된 시간—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영화 비포 선셋 리뷰 보기

미드 매드맨과 트루디텍티브 비교 리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