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 2장:7일째,하나님의 휴식과 새로운 전개
창세기 2장은 일곱째 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마무리한 후 만물에게 축복을 내리며 휴식을 취한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창조의 전개 상황을 보다 구체화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1장이 개론처럼 굵직한 키워드를 나열했다면, 2장에는 보다 디테일하게 상황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2장 4절에서 처음으로 ‘Lord’가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the God’에서 ‘the Lord God’가 처음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에서 주님 혹은 주인님으로 호칭이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요?
2.흙먼지로 사람을 만든 창조주
창세기 2장 5절은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척박한 땅에 비도 내리지 않고 경작할 사람도 없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비 대신 땅에 물을 뿌리고 있었나 봅니다. 뭔가 극적인 장면 묘사를 위해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을 암시한 것 같습니다.
그런 신비로운 상황 속에서 창조주는 땅에서 먼지로 사람을 만드십니다. 여태 흙으로 사람을 만든 줄 알았는데 먼지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다소 2차원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지로 만들었다니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와닿습니다.
고운 흙을 강조하기 위해 먼지라고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왠지 혼령 같은 것이 먼지나 연기처럼 흩날리니까 그런 것을 암시하기 위해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콧구멍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3.에덴동산이 아닌 에덴정원
창세기 2장 8절에 나오는 에덴은 동쪽에 있는 에덴 정원이지 에덴동산이 아니었습니다. 여태 에덴 동산으로 알고 있던 곳이 에덴 정원이었습니다. 아마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동산이 된 것 같습니다.

에덴이란 말이 평원이란 의미의 아카드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동산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또한 히브리어로는 천국이나 낙원이란 의미였다고 하니 분명 특별한 장소는 맞는 것 같고, 언덕이 있는 동산보다는 평지의 정원에 가깝다고 유추해봅니다.
3.1. 에덴의 정확한 위치
학자들이 분석한 내용들을 보면 역사적으로 문명의 발상지를 고려할 때, 그리고 네 개의 강줄기를 보면 메소포타미아 중부 지역에 에덴이 위치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란 동북부 타카브 지역에 에덴정원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학자들은 대체로 특정 지명이 있었다기보다는 일종의 낙원,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어떤 알 수 없는 지명을 지칭한다고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성경을 액면 그대로 읽으면 갑자기 에덴이 나온 것은 좀 생뚱맞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가 발굴되면서 이곳을 에덴 정원이라고 확신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에덴 정원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이 부근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고 지구를 번성하게 하는 데 시작점을 찍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은 해봅니다.
3.2. 에덴정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공간
여러 정황을 보면 에덴은 창조주 소유이지만 창조주가 6일 동안 작업한 업무에는 해당하지 않는, 즉 본래부터 있던 고유의 장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하나님 개인 소유의 서재 같은 곳 이었던 것입니다. 창조주가 자신의 개인 정원 같은 장소를 자신의 창조물 인간이 머물게 한 것입니다.
공상을 더하자면 다른 차원의 공간, 그곳이 창조주가 실제 머무는 공간이든 일종의 연구실 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시는 분인데, 더군다나 에덴 정원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후에 나올 선악과가 있는 곳인 것을 보면 연구실이 맞지 않았을까요?
3.3. 에덴 정원을 동쪽으로 지칭한 이유
창조주가 에덴 정원의 위치를 콕 찍어서 동쪽으로 지칭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주명리학 혹은 동양의 음양오행학에서 보면 해가 뜨는 동쪽은 봄이며 식물, 생장의 시작으로 봅니다. 뭔가 파릇파릇 시작되는 기운을 강조하기 위해 동쪽을 강조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동쪽의 에덴을 지칭한 것은 서쪽, 남쪽, 북쪽에도 비슷한 정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4.보기에 좋은 나무와 먹거리
정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도 인상적입니다. 보통 정원하면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수풀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창세기 2장 9절은 나무를 강조하였는데요. 북유럽 신화의 세계수가 떠오릅니다.

먼저 창조주는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은 나무들이 즐비한 정원 한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두고 이 부분은 후에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란 말도 있습니다. 어떤 인간이 탄생했는지는 몰라도 집도 절도 주지 않고 발가벗은 채 정원에서만 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냥 아주 미개한, 창조주의 애완동물 정도로 취급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에덴 정원은 아무 근심 걱정도 없고 몸에 좋은 열매 따 먹으며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낙원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그렇게 욕심 없이 남녀 둘이서 사는 일이 과연 궁극의 행복일까요? 인간이 희로애락을 알지 못하고 기쁘게 뛰어다닐 일만 있다면 그것이 사랑받는 개와 무엇이 다를까요?
5.복선 같은 느낌을 주는 구절
어쩌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경각심, 공포심, 즉 성경에서 줄곧 이야기하는 바로 그 원죄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설정을 해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하나님의 연구실에 아담을 발가벗고 살게 해놓고 금기하는 나무 열매를 심어놓고, 게다가 그전에는 살금살금 기어다니는 동물을 만들어둘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여하튼 하나님은 에덴 정원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이곳에서부터 인류의 시작을 알린 것입니다.
6.인류의 발상지: 네개의 강과 그 의미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그곳에서 네 개의 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덴은 현재 지구상에 없는 지명이라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이 네 줄기로 뻗어 나가는 것이 마치 문명이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유프라테스 등의 강 유역을 연상시키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6.1. 에덴 정원은 강의 발원지
어떤 학자들은 역사의 고서이기도 한 성경이 문명 발생 500년 후에 쓰인 것을 감안해서 많은 왜곡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실 에덴으로 물이 들어왔는지 에덴에서 물이 생겼는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에덴 정원에 있는 물은 어떤 강물이 흘러들어왔거나 강물로 단정하는 것보다는 샘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닷물과 다르게 강물은 생명의 원천이 되는 생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모든 물들을 한 곳에 모이라고 했을 때 그것들은 그냥 물들의 모임이었지 어떤 쓰임이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창조주는 그 모인 물들 중 생수로 쓸 만한 물줄기를 따로 모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6.1.1. 풍요를 상징하는 피손강
에덴에서 뻗어 나온 강 중 첫 번째는 피손입니다. 한국어로는 비손으로 알려져 있고, 하빌라 지역을 흐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비손과 기혼강은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인지 강의 위치에 대한 억측이 많은 편입니다.
비손은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 지역에는 특유의 향료와 오닉스 등의 진귀한 보석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특산물을 근거로 갠지스 강이나 인더스 강으로 보는 이도 있고,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브델리움은 일종의 나무 수액에서 나온 검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향유 같은 몰약의 일종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나무의 수액이 응고될 때 마치 진주알처럼 보인다고 해서 진주의 일종으로 귀히 여기는 모양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빌라 지역은 풍요를 상징하며 그렇기에 이 지역에는 진귀한 보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6.1.2.깊은 흐름을 의미하는 기혼강
풍요를 상징하는 피손강에 이어 기혼강은 터짐, 폭발, 깊은 흐름 등을 의미합니다. 기혼강은 쿠시땅 혹은 구스온을 흐르는 강으로 나오는데, 이집트의 남쪽에 있는 땅으로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일부는 기혼강이 나일강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일강의 발원지가 다르다고 부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류로 보면 아랍인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인들로, 쿠시는 검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대략 이와 같은 혈통의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6.1.3. 신속함을 의미하는 티그리스강
티그리스는 페르시아어로 화살을 의미합니다. 풍요와 폭발에 이어 빠른 흐름 혹은 신속함을 의미하는 티그리스는 비교적 낯익은 강입니다. 티그리스 강은 시리아 북동쪽 국경 부근에 닿은 후 이라크를 가로질러 남동쪽으로 흐릅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가 바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었죠.
6.1.4. 시작이자 미래의 경계 역할을 하는 유프라테스강
서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에 속하는 유프라테스 강은 터키의 아르메니아 산이 발원지입니다. 이 강은 지중해를 향해 서쪽으로 향하다 남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튼 후 시리아를 통과하고 티그리스 강과 합류한 후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를 지닙니다.
물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구약에서는 유프라테스가 강을 대신하는 단어로 쓰일 정도이지만, 유프라테스는 출발 혹은 돌파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봅니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부분은 유프라테스 강이 시간적인 경계로 표현되는 미래의 경계 역할을 의미한다는 어떤 이의 해석이 있습니다.
7. 창조주가 인간을 만든 원초적 이유
창세기 2장 15절은 창조주가 에덴 정원에서 일을 하고 유지하게 하려고 남자를 그곳에 데려가고 첫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입니다.
창조주는 인간의 주인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는 인간보다 먼저 다른 생명체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경작과 지배권을 주기는 했으나 이는 관리 차원에서 권한을 준 것이지, 특별히 더 우위에 있는 존재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다 원초적으로 이야기하면 창조주는 일을 시킬 노예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창조주가 최초로 만든 인간이 흑인이었다는 말도 이해가 갑니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옷을 입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으니까요.
7.1.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허락과 의무
창세기 2장 15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살 곳과 일할 곳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준 구절입니다. 그러나 대체 먹지 말아야 할 나무를 왜 심은 것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여하튼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부팅이 되는 순간 태초의 원죄가 이식되게끔 그러한 DNA를 만든 과정을 보여주는 구절이 아닌가 합니다.
7.2.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16절 구절은 조금 섬뜩합니다. 그러나 생명수와 선악과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한 것이 일종의 경고나 겁박을 준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문득 사용설명서를 알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기계처럼 먹고 마시고 누리고 유지하려고 만든 인간에게 선과 악을 인식하는 과실을 먹지 못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은 매우 단순한 생명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날로 보면 구글 시리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로봇 인간을 만든 것이지, 그처럼 지력을 줄 필요는 없어 보였던 것이죠. 그리고 에덴 정원에서 적응하는 것을 봐서 생명수도 먹이고 선악과도 먹여 업그레이드하려고 했는데, 인간이 미리 먹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 실패작으로 평생 일이나 하라며 고통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7.3.혼자있는 사람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낀 하나님
창세기 2장 18절~19절은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가 만든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며 이브를 만든 계기가 되고, 아담이 그가 만든 창조물에 이름을 붙인 대로 인정합니다.
창조주가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든 후 그냥 무심하게 여성을 만든 줄 알았더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일종의 측은함을 느낀 것이지요. 정황상 아담은 창조주가 만든 자연의 산물과 어울리면서 이름을 지어주었나 봅니다. 그 모습이 좀 안쓰러웠던 것이 아닐까요?
8. 이름에 관하여
아담은 남성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남자 인간을 의미하는 거였죠. 그런데 창조주도 자신의 작품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는데 아담은 사물의 이름을 짓고 있었습니다. 마치 AI가 자의적으로 사물에 이름을 짓는 것처럼 말입니다.
8.1. 아담이란 이름의 정의
아담은 히브리어로 인간을 뜻합니다. 또한 히브리어는 빨강 혹은 땅의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신이 인간을 땅으로 만들었고 땅은 붉기에 그런 뜻을 담은 아담이라고 부른 모양입니다.
이렇게 흙에서 기원한 사람을 아담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흙과 사람을 합친 뜻이 아담인 것이죠. 이를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냥 강아지더러 강아지야, 고양이를 야옹아, 하고 부르는 정도와 같은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8.2.아담은 모든 생명에게 이름을 지어준 이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아담은 그가 돌보는 가축들과 새 그밖의 모든 동물들에게 고유의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주인의식과 책임감 혹은 정서가 충만하거나, 무료함을 달래보고자 일종의 놀이 차원에서 지어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사람이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것들보다는 우위에 있으며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창조주의 피조물인데 아담이 이름을 멋대로 지은 것은 어찌 보면 혼날 일이 아닌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아담을 위해 조력자를 찾아줄 생각을 합니다. 이게 좀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8.3.창조주가 아담에게 마취제를 놨다고 생각
창조주가 특별히 명령한 것도 허락한 것도 아닌데 아담은 동식물에게 이름을 지어서 불렀고, 이를 본 하나님은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합니다. 마취제를 놓은 것이 아니면 일종의 최면술로 깊은 잠에 빠지게 한 것이겠죠.
아담이 잠든 사이도 아니고 창조주는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한 것이 포인트 같습니다. 마치 수술 전 마취를 놓듯이 창조주가 아담에게 단순 잠이 아닌 고통을 잊는 다른 차원의 잠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이를 공상과학적으로 상상하자면 일종의 리셋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아무튼 아담을 그와 같은 상태로 만든 이유는 아담을 도와줄 파트너를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던 거죠.
9.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여성을 창조한 까닭
아담이 혼자 이름 짓기 놀이하는 것을 안쓰럽게 여긴 것인지 어쨌든 이를 보시고 그를 깊게 잠들게 한 후 그에게서 갈비뼈를 하나 뽑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갈비뼈를 뽑은 것일까요? 옆구리가 시리다는 표현은 성경 구절에서 착안해서 나온 말인 것인지 실제 인간이 추위를 가장 먼저 느끼면서 파생된 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물론 옆구리가 시리다는 표현은 실제 추워서 쓰기보다는 외롭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긴 하지만요.
또한 한국말로 갈비는 갈라지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갈비뼈가 내장을 보호하는 일종의 창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것을 떠나 아담의 갈비뼈로 여성을 만든 것은 하나의 뿌리에서 갈래를 뻗은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루터는 몸 안에 있는 갈비뼈가 아닌 살이 붙어있는 갈비뼈를 뽑은 것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아담은 다소 기형적인 체형으로 태어났던 것인가요? 또한 근거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창조주가 아담의 오른쪽 13번째 갈비뼈를 가져갔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9.1.골수 채취를 한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갈비뼈는 은유적인 표현이고 그냥 측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보다 현실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자면 아담의 갈비뼈에서 골수를 채취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것으로 이브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10.상호보완적 관계로 만난 남과여
창조주는 남자가 생명체에게 이름 짓는 것을 보시고 남자에게서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한 것이 아닌 남자가 말을 하게 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떤 종속적인 관계를 내포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 혹은 서로 의지하고 의존하는 관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남자는 man 여자는 woman이라고 한 데에는 이처럼 성경을 읽으면 이유가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여자의 역할이 태초에 남자의 조력자 혹은 동반자 개념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니 남과 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10.1.하나가 된 것을 부끄러워 하지말라
창세기 2장 마지막 구절에는 창조주가 남자와 여자에게 부모로부터 독립되어 하나의 살이 되는 것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었다는 요즘에도 통용되는 비슷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많은 해석들이 결혼 제도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전에 남과 여는 부모 자체가 없는데 부모로부터 떨어져 독립한 하나의 살로 살라는 것일까요?
어차피 이들은 선악과도 먹기 직전이라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었을 텐데 하나님은 하나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살로 구성된 이 남녀를 탄생하자마자 알몸으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 둘에게 합체를 명하신 것 같네요.
어쨌든 창조주는 홀로 외로워 보이는 아담을 위해 짝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한 몸에서 태어났으니 한 몸이 되어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점이 기괴하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애초부터 부모가 없는 아이들인데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둘이 평생 함께하라고 하는 것도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