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정체성으로 사랑받은 80년대 그레이스 존스

80년대 스타 그레이스 존스 스토리

1980년대 대중문화사에서 그레이스 존스라는 이름은 단순한 유명인을 넘어 하나의 파격적인 현상이었다.

유니섹스 트렌드가 태동하던 시기, 그녀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무력화시키는 압도적이고 모호한 정체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80년대 스타 그레이스 존스 스토리 이에 관해 더 알아본다.

짧게 자른 머리와 각진 어깨, 흑인 특유의 강인한 골격은 당시 대중이 기대하던 여성상의 범주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80년대 스타 그레이스 존스 스토리

엄숙한 가정의 반항아에서 파리의 뮤즈로

1948년 자메이카의 보수적인 목사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존스는 12살 때 뉴욕 시라큐스로 이주했다.

엄격한 훈육은 오히려 그녀 내면의 강렬한 분출구를 자극했다.

13살 무렵 집을 떠나 히피 공동체에 합류한 그녀는 고고 댄서로 클럽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뉴욕 모델계의 문을 두드렸으나 당시의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던 그녀는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이곳에서 그녀의 검은 피부와 강직한 남성적 매력은 비로소 빛을 발했다.

이브 생 로랑, 겐조, 헬무트 랑 등 거장 디자이너들은 그녀에게 매료되었고, 그녀는 현대판 조세핀 베이커로 불리며 인종과 성별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독보적인 모델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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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드는 불꽃 같은 기질

그녀의 재능은 런웨이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7년 앨범 발매를 기점으로 가수로서도 정점에 올랐으며, 장 폴 고티에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화려한 클럽 문화와 모델 생활 이면의 공허함은 그녀를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그녀는 영화마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카메오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냈으나, 커리어의 정점에서도 사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생방송 중 진행자의 뺨을 때리는 기행을 벌이거나, 스웨덴 경비원, 터키 남성 등과의 엽기적인 연애사는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훗날 50세가 넘어서도 스스로를 ‘철없는 아이’라 평했을 만큼, 그녀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야성적인 삶을 고수했다.

생방송 폭행 사건과 안하무인 격의 기행

그녀의 논란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980년 영국의 토크쇼 ‘러셀 하티 쇼(Russell Harty Show)’에서 발생했다.

생방송 도중 진행자인 러셀 하티가 다른 출연자에게 주의를 돌리며 자신에게 등을 지자, 존스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그의 어깨와 뺨을 수차례 때리는 돌발 행동을 보였다.

이 장면은 전 세계로 송출되며 큰 충격을 주었고, 그녀에게 ‘통제 불가능한 괴짜’라는 낙인을 찍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인터뷰 시간을 어기거나 현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소위 ‘갑질’에 가까운 태도로 인해 업계에서는 다루기 힘든 인물로 악명이 높았다.

엽기적인 사생활과 정돈되지 않은 명성

그녀의 연애사 또한 대중의 관음증과 비판을 동시에 자극했다.

스웨덴 출신의 경비원이었던 돌프 룬드그렌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으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에서 보여준 집착과 기이한 행각들은 ‘엽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낳았다.

터키 출신의 남성 등 국적과 직업을 가리지 않는 화려한 남성 편력 속에서도 진지한 관계보다는 순간의 열정에 충실했던 그녀의 태도는 보수적인 대중에게 곱게 비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50세가 넘은 나이에 “나는 아직도 철이 없고 성숙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했을 만큼, 사생활 관리에 있어서는 명성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환멸 끝에 찾은 휴식과 자메이카의 평온

모델과 음악 활동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그녀였으나, 업계 전반에 흐르는 방탕함에 환멸을 느낀 존스는 1989년부터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1990년대 이후 대중 매체에서는 자취를 감추는 듯했으나, 고액의 기업 행사 등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며 경제적 기반을 유지했다.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하고 70대에 접어든 현재, 그녀는 자신의 뿌리인 자메이카에 집을 지을 계획을 세우며 손녀 아테나와 함께 뉴욕을 여행하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들 아폴로와 손녀로 이어지는 신화적 이름의 가족 관계는,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아티스트의 여운을 조용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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