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하나로 운명이 바뀐 엘리자베스 헐리
엘리자베스 제인 헐리(Elizabeth Jane Hurley)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의 공식 석상 등장으로 전 세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고, 이후 수십 년간 톱모델이자 셀러브리티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배우 휴 그랜트의 연인으로 시작해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조명한다.
1.단 한 벌의 드레스로 바뀐 운명
1994년,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시사회장은 엘리자베스 헐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무대였다.

당시 휴 그랜트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배우였으나, 그의 파트너로 참석한 헐리는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날 그녀가 착용한 베르사체(Versace)의 블랙 드레스—옷핀으로 과감하게 장식된 이른바 ‘세이프티 핀 드레스(Safety Pin Dress)’—는 패션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드레스 하나로 운명이 바뀐 엘리자베스 헐리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다.
협찬으로 입게 된 이 드레스 한 벌로 그녀는 단순한 ‘배우의 여자친구’를 넘어 당대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이는 패션이 한 사람의 인생 경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2.반항적인 펑크 소녀에서 무명의 배우로

영국 햄프셔주 베이싱스토크(Basingstoke)에서 태어난 헐리는 군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어린 시절 무용가를 꿈꾸며 발레와 연극을 공부했지만, 그녀의 10대는 반항심으로 가득했다. 분홍색 머리카락과 코 피어싱으로 대표되는 펑크(Punk) 문화에 심취했던 그녀의 과거는 현재의 우아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성인이 된 후 배우의 길을 선택했으나, 1987년 휴 그랜트를 만날 당시까지도 뚜렷한 대표작 없는 무명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3.에스티 로더와의 운명적 만남과 롱런의 비결
1994년의 파격적인 드레스 사건 직후, 헐리는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의 전속 모델로 발탁되는 기회를 잡는다. 드레스 하나로 인생이 바뀐 엘리자베스 헐리 잭팟이 터졌다.
당시 29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와 부족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에스티 로더는 그녀가 가진 고급스러우면서도 관능적인 이미지를 높이 샀다.
이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이후 20년 넘게 에스티 로더의 얼굴로 활동하며, 특히 유방암 캠페인 등의 홍보 대사로 활약했다.
이는 단순한 모델 계약을 넘어 브랜드와 인물이 함께 성장한 모범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십으로 평가받는다.
3.1. 에스티 로더가 무명의 배우를 선택한 이유
1990년대 중반, 에스티 로더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품질은 최고였으나 이미지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쓰는 화장품’이라는 고루한 인식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소비자들이 캘빈 클라인과 같은 트렌디한 브랜드로 이탈하는 상황에서, 에스티 로더에게는 브랜드의 우아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젊은 층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강력한 ‘한 방’이 절실했다.
엘리자베스 헐리는 이러한 에스티 로더의 까다로운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모순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녀가 입은 베르사체 옷핀 드레스는 전형적인 ‘배드 걸(Bad Girl)’의 도발과 파격을 상징했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잉글리시 로즈(English Rose)’라 불리는 영국 귀족풍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즉, 화제성은 파격적인 드레스로 끌어오되, 화장품 모델로서의 신뢰감과 고급스러움은 그녀의 타고난 마스크로 증명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결정적인 한 수는 당시 회장이었던 레너드 로더(Leonard Lauder)의 안목이었다.
그는 헐리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녀가 가진 잠재력을 꿰뚫어 보았다.

단순히 외모가 아름다운 모델은 많았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에너지와 자신감, 사람을 끌어당기는 성격(Personality)을 가진 인물은 드물었다.
레너드 로더는 그녀가 단순한 광고 모델을 넘어, 브랜드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살아있는 캐릭터’임을 간파했다.
마케팅 비용 측면에서도 헐리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미 드레스 사건으로 전 세계 미디어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티 로더 입장에서 그녀의 기용은 별도의 홍보비용 없이도 전 세계 1면 톱기사를 장식할 수 있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그녀와의 계약 소식은 그 자체로 거대한 뉴스가 되었고, 에스티 로더는 단숨에 ‘가장 핫하고 현대적인 브랜드’로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헐리의 발탁은 도박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비즈니스 전략의 승리였다.
4.연기력 논란을 넘어선 스타성
모델로서의 승승장구와 달리, 배우로서의 평가는 엇갈렸다.
<오스틴 파워>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지만,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성인 영화 배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는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헐리는 이러한 비판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강점인 스타성과 이미지를 활용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생존했다.
연기력 논란과는 별개로, 대중이 그녀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파란만장한 사생활과 굳건한 입지
헐리의 사생활은 언제나 타블로이드의 1면을 장식했다.
13년간 사실혼 관계였던 휴 그랜트가 1995년 매춘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도 그녀는 곁을 지켰으며, 2000년 결별 후에도 그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로 남았다.
이후 헐리는 백만장자 스티브 빙과의 사이에서 아들 데미안을 낳았으나 친자 확인 소송까지 가는 진통을 겪었고, 2007년에는 인도 섬유 재벌 아룬 나야르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으나 2011년 이혼했다.
이러한 복잡한 사생활과 가십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수영복 브랜드를 런칭하여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50대가 넘은 현재까지도 전성기 시절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6.전략가 혹은 아이콘
엘리자베스 헐리는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발판 삼아 거대한 부와 명성을 쌓아 올린 영리한 전략가임은 분명하다.
드레스 한 벌로 시작된 그녀의 신화는 에스티 로더라는 든든한 날개를 달고 완성되었다.
헐리는 대중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판타지’를 완벽하게 구현해 냄으로써, 특별한 대표작 없이도 롱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현대 셀러브리티 문화의 상징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