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영적 예술의 창시자 힐마 아프 클린트

영적 예술의 창시자 힐마 아프 클린트 이야기

1. 스웨덴의 여성 화가에서 출발한 영매자

1862년 10월 26일, 스톡홀름 근교 솔나(Solna)에서 태어난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녀는 우리가 당연시해온 추상미술의 기원이라는 서구 미술사의 경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은 장본인이다.

해군 장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듯한 지성적이며 과학적 분위기,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몰두했던 자연, 식물학, 수학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이는 훗날 그녀 내부에서 터져 나올 영적 성숙을 위한 정교한 인식 도구들의 바탕이었다.

스톡홀름 기술학교와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초상화, 풍경화, 식물 삽화 같은 ‘보이는 것을 충실히 재현하는’ 전통적 회화를 숙련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중요하다.

그녀는 그 완벽히 정립된 재현의 문법을 완전히 부수기 위해, 오히려 그 문법을 먼저 체화해야 했던 고독한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2. 영적 예술의 창시자

영적 예술의 창시자 힐마 아프 클린트 그녀의 작품세계는 19세기 말 유럽 전역을 휩쓴 신비주의적 공기—신지학(Theosophy)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안트로포소피 같은, 과학과 영성 사이의 지적 탐구—를 호흡하는 것과 같다.

그녀가 예술에 접목한 것은 단순히 영매술적 흥미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우주론적 틀이었다.

특히 네 명의 친구와 결성한 비밀 모임인 다섯 명(De Fem)이 중요하다.

그들이 행한 자동기술(mediumship)과 통신 세션의 기록, 그리고 높은 마스터들과의 교류를 통해 회화의 출발점을 설정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는 예술적 행위를 자아의 표현에서 영적 존재가 인간의 손을 빌려 남긴 기록으로 전환시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그녀의 붓은 더 이상 화가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고통스러운 추상적 이행(移行)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종의 영적 강림(降臨)으로서의 추상화를 목격하게 된다.


3.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색

힐마 아프 클린트의 존재론적 핵심은 1906년부터 1915년 사이에 제작된 193점의 대작 연작 《사원으로의 그림들(The Paintings for the Temple)》에 응축되어 있다.

힐마 아프 클린트 그림

이 연작은 보이지 않는 것—영적 세계의 구조, 내면적 변이, 존재의 양태—을 시각화하려는 지독한 집착의 결과물이었다.

기하학적 도형, 생물적 형태, 색채, 그리고 복합적인 상징의 구축은 당대 회화가 도달할 수 있었던 지점을 수십 년 앞서 질주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등 소위 추상회화의 선구자들보다 앞섰다는 평가는, 우리 모두가 짊어진 서구 중심의 미술사적 편향에 대한 가장 준엄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대작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작품이 진정으로 이해될 시점이 올 때까지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었다.

이는 작품이 내포한 혁명적 에너지가 섣부른 해석으로 난도질당하는 것을 막으려는, 미래의 의식 수준을 기다린 자기 보호적 결단이었다.


4. 내부의 구조를 해부하는 영혼의 수학

그녀의 작품에서 파랑이 정신(spirit)을, 노랑이 남성성을, 붉은색과 핑크가 사랑·생명력을 상징하는 엄격한 색채 체계는 단순한 미감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 이분법—물질/영성, 남성성/여성성, 내면/외면—을 시각적으로 봉합하고 재구성하려는 영혼의 수학이었다.

원형과 나선형, 분할된 영역, 엄격한 대칭 구조는 곧 존재의 근원적 질서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흔적이다.

초기 과학 삽화가로서의 경험, 식물과 생물 형태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추상적 형상으로 전화(轉化)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하는 회화적 언어로 변모했다는 점은, 과학적 엄밀함과 영적 직관이 한 개인의 지성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될 수 있는지 그 복잡다단한 과정을 반추하게 만든다.


5. 사후의 부활과 현대적 재발견의 당위성: 미술사의 수정

1944년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도 이 작품들이 오랫동안 비공개 상태로 잊혀져 있었고, 비로소 1980년대 중반에야 예술사적 재검토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미술사의 서술 자체가 얼마나 편향되고 지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극적인 보고서와 같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회고전 《Hilma af Klint: Paintings for the Future》가 일으킨 전 세계적 반향은, 그녀가 단순히 여성 작가가 아니라 추상미술의 진정한 선구자로 재평가되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이 드디어 관철된 사건이었다.

힐마 아프 클린트 작품
Grupp IV, nr 7. De tio största,Mannaåldern, 1907Tempera på papper uppfodradpå duk315 × 235 cmHAK108© Stiftelsen Hilma af Klints Verk

그녀의 작업은 성(性)과 젠더 구조가 완고했던 미술계에서 여성으로서 독자적인 영성담론을 구축했다는 의미를 넘어, 재현의 전통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가장 과감하고 근원적인 실험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사의 좌표를 수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6.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힐마 아프 클린트와 함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동시대적 또는 후대적 영혼의 친척들—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쿤츠, 마틴, 오키프, 클레—을 단순히 추상미술이라는 형식적 범주로 묶는 것은, 그들의 고뇌에 대한 경솔한 모독이 될 것이다.

그들은 회화를 단순한 재현을 넘어 정신의 기하학을 구축하는 행위로 보았다.

  • 칸딘스키는 신지학적 선언을 통해 색과 선을 ‘영혼의 울림’으로 해석하고 음악적 리듬을 시각화했다.
  • 몬드리안은 수직과 수평의 교차 속에서 ‘보편 질서’의 조화를 찾았다.
  • 말레비치는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을 통해 ‘순수 정신의 탄생’을 선언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추상적 초월’이라는 동일한 벽을 뚫고 있었던, 숙명적인 미술사적 쌍둥이들이었다.

엠마 쿤츠가 진자(펜듈럼)를 사용해 진동과 에너지의 패턴을 ‘치유 도식’으로 기록했듯, 아그네스 마틴이 침묵과 비움 속에서 ‘정신의 고요함’을 극도로 절제된 선으로 표현했듯, 이 모든 작업은 현상계의 사물보다 더 깊은 질서를 탐색하고, 색과 선을 통해 존재의 진동을 기록하려는, 내면의 수학(혹은 영혼의 물리학)이라 부를 수 있는 예술의 역사였다.


7. 결론

힐마 아프 클린트는 전통적 교육, 과학적 관찰, 그리고 영적 탐구라는 세 갈래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20세기 추상미술의 문턱을 가장 먼저 넘었던 작가이다.

그녀의 이름이 오랫동안 뒤편에 머물렀던 비극, 그리고 오늘날 그 의미가 새롭게 확산된다는 희망이야말로 현대미술사가 안고 가야 할 가장 중요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그녀가 구축해낸 회화 언어는 단지 시각적 형식의 혁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관계 속의 구조’를 사유하게 만드는, 필연적이고도 엄숙한 장치인 것이다.

엄밀하게 힐마는 칸딘스키보다 앞선 추상화의 창시자로 불리긴 하지만 동시에 자기 시대의 미술 문법과는 단절된 비정규적 작가로 분류되고 있다.

일반인의 눈에 힐마의 그림체는 다소 유아적이고 시각적 완성도가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미술 아카데미 출신이긴 해도 영적 메시지를 받은 그대로 옮긴다는 태도를 취한 영향도 크다고 본다.

물론 영혼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유아적 요소가 단순 실력 혹은 실수라기 보다는 의식적으로 선택된 순수였다고 보일 수 있다.

미숙하지만 진실한 회화라고는 하는데 이 역시 주입식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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