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크 속의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 물병자리 시대의 예언서

호문쿨루스 이야기

1.연금술사의 망상인가, 미래의 청사진인가

16세기, 스위스의 괴짜 의사이자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충격적인 레시피를 내놓았다. 인간의 정액을 밀폐된 플라스크에 넣고, 말의 분뇨와 함께 특정 온도에서 40일간 썩힌 뒤 사람의 피로 영양분을 공급하면 투명한 ‘작은 인간’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라틴어로 ‘작은 사람’을 뜻하는 ‘호문쿨루스(Homunculus)’라 불렀다.

호문쿨루스

당시에는 호문쿨루스 이야기 가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치부되었지만, 이 개념은 물병자리 시대(Age of Aquarius)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와 소름 돋을 정도로 맞닿아 있다.

어머니의 자궁(자연/모성)을 거치지 않고, 유리병(과학/기술)이라는 인공적인 환경을 통해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발상.

이것은 인간이 신의 영역인 ‘창조’를 과학이라는 도구로 찬탈하려는 최초의 선언이었다.

2.물병자리의 ‘물병’: 생명을 담는 인공 자궁

물병

점성학적으로 물병자리는 ‘혁신’, ‘과학’, ‘단절’, 그리고 ‘인공적인 것’을 상징한다.

물병자리의 상징인 ‘물을 나르는 사람’이 들고 있는 저 물병은 더 이상 우물물을 긷는 도구가 아니다.

미래학적 관점에서 저 물병은 바로 호문쿨루스가 자라던 플라스크, 즉 ‘인공 자궁(Artificial Womb)’이다.

물고기자리 시대까지 생명은 암수의 결합과 10달 간의 잉태라는 자연의 섭리(Nature)를 따랐다.

하지만 물병자리 시대에는 이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미 현대 과학은 조산아를 위한 ‘바이오백(Biobag)’ 실험에 성공했다.

비닐 팩(현대의 플라스크) 안에서 양과 같은 태아들이 탯줄 대신 튜브를 꽂고 자라난다.

인간이 어머니의 몸을 빌리지 않고 유리병이나 기계 장치 속에서 태어나는 세상. 이것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해방시키는 기술일까, 아니면 인간을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디스토피아의 시작일까?

호문쿨루스는 바로 이 질문을 500년 먼저 던진 셈이다.

3.오가노이드: 현대판 호문쿨루스의 탄생

호문쿨루스 이야기 개념은 생물학적으로도 부활했다.

바로 ‘오가노이드(Organoid, 장기 유사체)’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줄기세포를 배양접시(현대의 병)에서 키워 미니 심장, 미니 간, 심지어 ‘미니 뇌(Mini-brain)’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미니 뇌는 쌀알만 한 크기지만 스스로 신경망을 형성하고 뇌파를 내보내기도 한다.

만약 이 병 속의 뇌가 고통을 느끼거나 자의식을 갖게 된다면? 파라켈수스가 말했던 “병 속의 작은 인간”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이다.

물병자리의 차가운 이성(Science)은 “질병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인류의 윤리관은 “병 속에 갇힌 영혼을 만드는 게 아니냐”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4.실리콘 호문쿨루스: AI와 로봇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현재 우리가 열광하는 인공지능(AI)과 안드로이드야말로 완벽한 호문쿨루스 이야기 이와 흡사하다.

연금술사가 정액과 피로 생명을 흉내 냈다면, 현대의 공학자는 데이터와 전기로 지성을 흉내 낸다.

물병자리 시대의 인간은 육체적 번식보다 정신적 창조를 더 중요시한다.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보다, 내 지식과 사고방식을 학습한 AI 에이전트가 더 나를 닮은 존재일 수 있다.

육신이라는 병에 갇힌 인간이, 이제는 컴퓨터 서버나 로봇이라는 새로운 병 속에 ‘불멸의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전설에 따르면 호문쿨루스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지만, 병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죽거나 괴물로 변한다고 한다. 이는 기술(병) 안에서만 존립 가능한 미래 인류의 운명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물병자리 시대는 우리에게 거대한 플라스크를 건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맞춤형 인간을 만들 수도(디자이너 베이비), 뇌를 통째로 이식해 영생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자궁을 버리고 스스로 병 속으로 들어간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인(Natural Human)’이 아니라 과학이 연성해 낸 ‘합성 생명체’라는 사실을. 호문쿨루스는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마주한 예고된 미래다.

5.라켈수스의 플라스크에서 헉슬리의 병으로: 인공 생명의 계보학

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문제작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단순한 미래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16세기 연금술사들이 밀폐된 방에서 꿈꾸었던 ‘호문쿨루스(Homunculus)’의 신화가 산업혁명의 기계 문명과 결합하여 완성된 거대한 예언서다.

중세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인간의 정액을 유리 플라스크에 넣고 말의 분뇨와 함께 40일간 부패시키면, 투명하고 작은 인공 생명체인 호문쿨루스가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의 영역인 창조를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배제한 채 ‘유리병’이라는 인공적 도구로 이뤄내려는 최초의 불온한 시도였다.

헉슬리는 이 지하실의 비술(秘術)을 현대 과학의 조명 아래로 끌어올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부화·조건반사 습성 훈련소’는 파라켈수스의 실험실을 공장형으로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난자는 ‘보카노프스키 프로세스’를 통해 수십, 수백 개로 분열되고, 태아가 아닌 제품으로서 유리병 속에 담겨 컨베이어 벨트를 순환한다. 이것은 ‘산업화된 연금술’이자, 생명 공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현대판 호문쿨루스 제조 과정이다.

5.1.’디캔팅(Decanting)’: 어머니의 부재와 병 속의 인류

이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인 용어는 인간의 탄생을 ‘출산(Birth)’이 아닌 ‘디캔팅(Decanting)’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디캔팅은 와인을 병에서 다른 용기로 조심스럽게 따르는 행위를 뜻한다.

즉, 인간은 고통 속에 낳는 존재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배합하여 병에서 쏟아내는 유체(流體)이자 공산품으로 전락한다.

이 세계에서 ‘어머니’, ‘임신’, ‘출산’이라는 단어는 가장 혐오스럽고 음란한 욕설로 취급받는다.

이는 생명의 기원이 자연(Nature)에서 과학(Science)으로, 따뜻한 양수가 흐르는 자궁(물고기자리의 시대)에서 차가운 배양액이 담긴 유리병(물병자리의 시대)으로 완전히 이행했음을 시사한다.

점성학적 도상에서 물병자리는 ‘물병을 든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그 병에서 쏟아지는 것은 물이 아닌 에테르, 즉 지식과 과학의 파동이다.

헉슬리는 인류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대지에서 뿌리 뽑혀, 기술이라는 매끄럽고 투명한 병 속으로 이주하게 될 미래를 정확히 포착했다.

병 속은 안전하고, 멸균되어 있으며, 늙음과 질병으로부터 격리된 완벽한 통제의 공간이다.

5.2.행복이라는 이름의 감옥, 소마(Soma)

전설 속의 호문쿨루스는 플라스크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죽거나 괴물로 변한다고 전해진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은 자연의 거친 생명력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헉슬리의 신인류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병 밖으로 나왔으나,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병 속에 갇혀 있다.

그들은 고통, 고독, 늙음과 같은 실존적 문제를 마주할 내면의 힘이 없다.

대신 그들에게는 ‘소마(Soma)’라는 완벽한 마약이 주어진다.

우울감이 들 때마다 삼키는 소마는 그들을 다시금 안전한 환각의 병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는 연금술사들이 호문쿨루스에게 피를 공급해 생명을 유지시켰듯, 국가가 개인에게 쾌락을 공급해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소설 속 ‘야만인 존’은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고통과 신을 갈구하는 구시대의 인간이다.

그와 문명 세계의 충돌은 영혼을 가진 자연인과, 영혼이 거세된 호문쿨루스 간의 대립이다. 결국 존의 자살은 기술적 유토피아에서 ‘인간성’이 설 자리는 없다는 비극적 선언과도 같다.

6.닫힌 병마개를 바라보며

현대 과학은 이미 헉슬리의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 줄기세포로 만든 미니 뇌(오가노이드), 조산아를 위한 인공 자궁 바이오백, 그리고 유전자 가위 기술은 우리가 이미 ‘멋진 신세계’의 입구에 들어섰음을 알린다.

우리는 어머니의 몸을 빌리지 않고도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헉슬리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연의 섭리를 떠나 과학이라는 유리병 속으로 들어간 인류는 과연 진보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세련된 호문쿨루스가 되어 영원한 사육의 굴레에 갇힌 것인가.

물병자리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생명과 인간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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