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임을 벤치마킹한 이스라엘의 반역과 진화 과정

사무엘상 8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왕정 요구는 신정 통치에서 인간 중심 정치로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고이임(goyim)’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들을 벤치마킹하며 신정 체제를 거부한 역사적 순간을 분석합니다.

1. 사무엘상 8장 5절 최초로 등장한 고이임

사무엘상 8장 5절에는 nations란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goyim 고이임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방 민족들, 또는 열국들을 의미합니다. 현대에는 이러한 고이임이란 용어라 유대교 맥락에서 비유대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사무엘이 늙어 사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자 그의 두 아들들에게 인계하지만 백성들은 그의 두 아들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항의 합니다.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되 다른 모든 나라들, 그러니까 이방 민족들 같이 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고이임 goyim 히브리어 이미지

goyim=nations=이방 민족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왕정 수립의 정당화 논리에서 이방 민족들을 기준점, 그러니까 벤치마킹하는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우리도 왕을 세우자.

2. 모세의 신정정치와 사무엘 시대의 왕정 요구

nation 즉 국가를 원한다고 백성들이 직접 언급한 것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모세 시대의 신정정치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모세 시대의 신정정치와 사무엘 시대의 왕정 요구에 관한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항목모세 시대 신정정치사무엘 시대 왕정 요구
권위의 기원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이방 민족 체제에 대한 벤치마킹
지도자 임명 방식하나님이 직접 선택한 인물 모세, 여호수아인간의 요구로 사무엘의 요청 그리고 하나님의 허용
통치 구조하나님→모세→장로/사사→백성왕→군사조직→행정체제→백성
법의 원천하나님의 율법왕의 명령과 일부 율법 인용 및 차용
리더의 권위카리스마적, 계시 기반, 권력보다 중재 역할세습적, 제도화된 권위, 징병과 과세의 권리 보유
백성의 정체성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다른 민족처럼 되는 것을 추구
이방 민족과의 관계구별, 분리, 때론 심판 대상동일화, 경쟁, 모방

이처럼 하나님 중심의 체제에서 왕이 없던 혼란한 시기를 겪은 후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스스로 왕을 세우길 원합니다. 사무엘은 이를 듣고 하나님께 요청하고 하나님은 탐탁치는 않지만 허락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좀 컸다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 중심 정치 모델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정치 체제의 결정적 전환점

모세가 세운 신정 정치는 하나님이 중심이었던 반면 사무엘 시대 왕정 요구는 인간 왕을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하늘의 질서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표면적으로는 왕이 있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체계적 운영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현실적 요청이었지만 이는 신적 권위를 인간 권력으로 치환한 결정적 전환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이 시점부터 수백 년간 유지해온 신정 체제 즉 사사시대에서 왕정 체제로 전환을 하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역사 발전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꾼 사건입니다.

4. 인간의 요구는 늘 탐탁치 않았던

사무엘상 8장에서 인간이 왕을 달라고 요구한 부분은 이전의 다른 장이 연상됩니다. 민수기 32장에서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모세에게 직접 자신들이 원하는 땅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모세는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허락했습니다. 그보다 전에 민수기 11장에서도 백성들은 하나님께 고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매추라기를 보내주시되 탐욕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내버려 둡니다. 이번 왕을 세우게 해달라는 대목 역시 하나님은 뭔가 탐탁치 않게 여기면서 허락을 하십니다.

5. 종교와 정치 분리 시작 완곡한 반역?

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며 그들에게 통치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니 자신들의 왕을 뽑고 직접 통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뭐랄까 완곡한 반역으로 느껴집니다. 사무엘상 8장 7절에도 그것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상8:7)

하나님조차 버림을 받았다고 느낀 것이니 명백한 반역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이는 필연적 진화과정이었습니다. 물론 신학자 입장에서는 이것이 완곡한 반역임을 알면서도 이 반역마저도 자신의 더 큰 구원 계획 속에 포함을 시키며, 훗날 하나님 말이 맞잖아. 이것도 다 계획하신거야, 라며 정답입니다 놀이를 하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6. 고이임 벤치마킹이 갖는 의미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비교적 문명이 발달했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질서와 내란 윤리적 타락이 반복되면서 개차반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급기야는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란 자부심은 온데 간데 없고 다른 민족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마저 갖게 됩니다. 이들이 본 이방 민족 고이임은 왕이 있고 성읍이 있으며 강력한 군사와 경제력을 갖춘 체제화된 문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기보다는 뒤처진 부족 공동체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선민 의식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하나님을 중심으로 자족하는 문명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멸시하던 이방민족 고이임을 벤치마킹할 정도로 그들은 길을 잃었고 자신을 다른 민족들과 동일한 존재로 낮추었습니다. 그 순간 이들은 선민이 아닌 후발 문명 지대의 수용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명을 잃지 않기 위해 문명을 모방하려는 역설에 빠졌습니다. 광야시대에 하나님만으로 충분했던 이들에게 가나안 정착 이후에는 눈앞의 문명들에 현혹되어 급기야는 정체성마저 따라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이임 벤치마킹은 곧 자기 부정과 신앙적 혼합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제도를 배우고 그들과 혼인을 하고 왕을 통해 군사. 경제 중심 국가를 꿈꾸었는데 이렇게 역사는 발전하였지만 뭐가 옳은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무엘상 8장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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