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한 시대별 잇걸 스타일 연대기

한국을 대표한 시대별 잇걸 이들에 관해 알아보기 이전, 최초의 잇걸에 관해 알아보자.

최초의 잇걸 클라라 보우

‘잇걸(It Girl)’은 잡지를 도배했던 신조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설명하기 힘든 매력, 즉 ‘그것(It)’을 소유하여 당대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흡수하는 인물이다.

잇걸의 스타일은 곧바로 트렌드가 되며, 패션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시대별 잇걸 스타일 연대기

1.1960s. 윤복희: 미니멀리즘과 도전 정신

한국을 대표한 시대별 잇걸 중 1960년대 후반, 가수 윤복희는 한국 대중에게 가장 급진적인 스타일 충격을 주었다.

파격적인 미니스커트와 과감한 헤어스타일 이는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패션의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문화적 선언이었다.

그녀의 미니 웨딩드레스는 ‘관습 타파’의 상징으로, 윤복희는 패션을 통해 당당함주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녀의 행보는 스타일을 넘어선 태도의 혁명으로 보이지만, 그녀만의 순수한 개성이라 보기는 어렵다.

1.1. 윤복희와 트위기 같거나 다르거나

한국을 대표한 시대별 잇걸 60년대 윤복희와 트위기

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청년 문화가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며 패션의 패러다임을 바꾼 시기였다 이 시대적 흐름을 상징하는 두 인물이 바로 한국의 윤복희와 영국의 트위기(Twiggy)다.

이들은 각각 동양과 서양에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하며 여성의 신체 해방과 스타일 혁명을 이끌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그 영향력의 전파 방식과 미학적 뿌리에서는 명백한 차이와 모방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윤복희의 1960년대 스타일을 분석하면 당시 전 세계를 휩쓴 모즈 룩(Mods Look)과 트위기의 시각적 기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윤복희가 1967년 미국 활약을 마치고 귀국할 당시 선보인 패션은 트위기가 확립한 모드 스타일(Mod Style)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었다.

윤복희는 트위기의 전매특허였던 픽시 컷(Pixie Cut)과 속눈썹을 강조한 짙은 아이 메이크업을 한국적 스타일로 변형했다.

특히 무릎 위로 한참 올라가는 미니스커트와 에이라인(A-line) 원피스는 트위기가 런던 하이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전파한 실루엣과 일치한다.

윤복희가 단순히 옷을 짧게 입은 것에 그치지 않고 서구적이고 중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며 기존의 여성미를 부정했던 태도는 트위기가 보여준 보이시한 매력(Boyish charm)의 전형적인 차용으로 볼 수 있다.

신체 조건과 미학적 지향점의 차이

두 인물은 미니스커트라는 동일한 아이템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화하는 신체적 접근과 미학적 지향점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트위기는 깡마른 몸매와 소년 같은 얼굴로 성적인 굴곡을 완전히 지운 채 패션을 일종의 기하학적 도형처럼 소화했다.

그녀의 미학은 인간의 육체성보다는 옷의 구조를 강조하는 현대적인 미니멀리즘에 가까웠다.

반면 윤복희는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을 겸비한 퍼포머로서 미니스커트를 활용했다.

그녀의 스타일은 트위기처럼 정적인 조형미에 머물지 않고 무대 위에서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강조하는 도구였다.

트위기가 패션 모델로서 이미지 자체를 소비시켰다면 윤복희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대를 누비는 행위를 통해 한국 사회에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문화적 충격과 전파의 맥락

한국을 대표한 시대별 잇걸 그 중에서 두 잇걸은 각 사회에 던진 충격의 결 또한 상이했다.

영국에서 트위기의 등장은 패션 산업의 민주화와 젊은 층의 경제적 부상을 의미했지만 한국에서의 윤복희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는 투쟁적 성격이 짙었다.

윤복희가 공항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내렸다는 세간의 인식(비록 훗날 광고용 연출임이 밝혀졌으나)은 그 자체로 당시 보수적인 한국 사회가 느꼈던 거대한 문화적 충돌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윤복희는 런던에서 시작되어 트위기를 통해 완성된 미적 형식을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 이식한 스타일 전파자였다.

그녀는 트위기의 외형적 스타일을 명백하게 추종하고 모방했으나 이를 한국적 무대 퍼포먼스와 결합함으로써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한국형 모즈 룩의 창시자로 남게 되었다.

실제 윤복희가 해외에서 활동하며 목격한 서구의 전위적 스타일이 한국 대중문화의 현대화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은 패션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970년대 윤여정과 정윤희: 개성과 절대미의 양립

1970년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 스펙트럼의 잇걸들이 공존하며 트렌드를 양분했다.

윤여정 정윤희

10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잇걸 그중에서 윤여정은 정형화된 미인상 대신, 지적이고 도회적인 세련미를 내세웠다.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을 선호하며 구축한 그녀의 모던하고 개성 강한 스타일은 기존의 여성상과 차별화되었다.

그녀는 스마트함이 곧 스타일임을 보여주었으며, 시대를 초월하는 ‘개성파’ 잇걸의 원형이다.

한편 정윤희에게 패션은 부차적일 만큼, 압도적인 외모가 곧 트렌드로 작용했다. 그녀의 미모는 당시 대중에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기준이었으며, 그녀의 존재 자체가 시대를 풍미한 미적 콘텐츠였다.

3.1980년대 후반 최진실: 대중 친화적인 신드롬

80년대 최진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절정을 이룬 최진실은 ‘가장 대중적인 잇걸’로 평가된다.

최진실이 한국 대중문화사의 전무후무한 잇걸로 군림한 황금기가 90년대 초반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녀가 대중의 시선에 포착되어 강력한 스타일 기호로 부상하기 시작한 기점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마땅하다.

1988년 가전제품 광고를 통해 외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 한 줄은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80년대적 가치관과 90년대적 감수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문화적 사건이었다.

또한, 깜찍하고 귀여운 외모에 평범한 듯하지만 센스가 돋보이는 생활 밀착형 스타일링이었다.

그녀가 선보인 헤어스타일, 의상 등은 전 연령층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으며 전국적인 유행으로 직결되었다. 그녀는 패션을 통해 대중과의 친밀도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강력한 ‘트렌드 생성자’였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이후 줄곳 한국을 대표하는 잇걸 인증.

4.1990년대 이승연과 김혜수: 성숙함과 파워 섹시의 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잇걸 90년대 이승연과 김헤수

한국을 대표하는 잇걸 중 90년대는 여성들이 ‘성숙하고 강렬한 이미지’에 열광하기 시작하며 기존의 청순미를 탈피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이승연은 짧은 커트, 밝은 염색, 컬러 렌즈 등 과감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시크하고 도회적인 여성상을 대표했다. 이 스타일은 당시 트렌디한 지역 여성들의 스타일 교본이 되었으며, 강한 자기 주장을 담은 패션을 제시했다. 90년대 유달리 쇼트커트가 유행한 것은 전부 다 이승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십대에 데뷔하였지만 데뷔 초부터 성인 역을 해왔던 김혜수는 볼륨 있는 체형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파워풀하고 섹시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몸매를 강조하는 의상과 볼드한 메이크업은 새로운 여성의 자신감과 ‘걸크러시’ 아이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5.2000년대 전지현: 미니멀리즘과 청순 건강미

2000년대는 자연스러운 매력과 건강미가 강조되며, ‘청순 섹시’가 주류 트렌드가 되었다.

긴 생머리, 최소화된 메이크업,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활용한 미니멀하고 건강한 스타일 전지현은 ‘타고난 듯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여성들이 과도한 치장 대신 본연의 건강함과 아우라를 중시하도록 유도했다.

6.2010년대 수지 & 설리: ‘과즙미’와 자유분방함

수지 설리

2010년대의 잇걸은 청순함을 바탕으로 하되,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매력을 더했다.

하얀 피부에 붉고 도톰한 입술을 강조하는 ‘과즙 메이크업’을 대중화시켰다.

수지설리는 SNS를 통해 친근함과 털털함, 때로는 ‘댕청미’로 불리는 인간적인 매력을 동시에 보여주며 새로운 시대의 워너비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순수함과 솔직함이 융합된 새로운 매력 코드를 제시했다.

7.2020년대 제니의 시대

2020년대는 단 한 명의 아이콘이 시대를 독점하던 과거와 달리,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따라 취향이 세분화되며 다수의 ‘잇걸’이 동시다발적으로 각기 다른 영역을 점령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2020년대에 들어서 ‘잇걸’의 정의는 더욱 확장되었다 완벽한 미모보다 ‘강렬하고 독특한 개성’과 ‘자기 서사(Narrative)’가 우선시된다.

솔직함과 약간의 일탈적인 이미지를 포함하는 소위 ‘매운맛’ 캐릭터가 부상했다.

이들은 힙합, 스트리트, Y2K 레트로 등 다양한 서브컬처를 혼재시킨 과감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SNS를 통해 사적인 모습까지 노출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명확히 구축하는 ‘트렌드 크리에이터’들이 잇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원탑’보다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그룹이 주목받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니는 단연 원탑으로 시대를 대표했다.

블랙핑크의 제니는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잇걸의 정점이다.

그녀는 단순히 인기 있는 아이돌을 넘어, ‘인간 샤넬(Human Chanel)’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아이돌과 럭셔리 하우스의 결합을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자 문화적 현상으로 정착시켰다.

제니의 스타일은 하이엔드 명품과 저렴한 빈티지 아이템, 혹은 키치한 액세서리를 믹스 매치하는 ‘하이틴 룩’의 공식을 완성했다. 그녀가 착용하는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그녀의 어깨 라인,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 신체적 특징과 스타일링 자체가 2020년대 미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8.스타일의 진화: 잇걸은 시대의 자화상

이처럼 한국의 잇걸 계보는 패션의 진화를 넘어, 한국 여성상의 변화를 반영한다.

60년대의 억압 탈피, 90년대의 주체적인 섹시함, 2020년대의 강렬한 자기표현까지 잇걸들이 입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곧 시대의 문화적 코드가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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