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시대의 연인 릴리 엘시 스토리

에드워드 시대의 연인 릴리 엘시 그녀의 빛과 그림자

에드워드 시대의 연인 릴리 엘시 그녀는 20세기 초반 영국 에드워드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눈부신 스타이자 패션 아이콘이었다.

1886년 아서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 위에서 재능을 펼치기 시작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를 단순한 배우를 넘어 당대 최고의 여성으로 등극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이었다.

1907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한나 글라바리 역을 맡은 그녀는 단숨에 영국 전역의 연인이 되었으며 그녀가 무대 위에서 선보인 화려한 스타일은 곧바로 사회적 현상으로 번져나갔다.

1.가장 많이 촬영된 스타의 탄생

1900년대 초반, 영국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얼굴을 꼽는다면 단연 릴리 엘시(Lily Elsie)일 것이다.

1886년 4월 8일 웨스트 요크셔 암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당대 대중문화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특히 그녀의 이미지는 수많은 사진 엽서로 제작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는데, 이는 현대 아이돌의 포토카드 수집 열풍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녀는 에드워드 시대에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스타’이자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인으로 역사에 남았다.

에드워드 시대의 연인 릴리 엘시

2.수줍은 소녀, 무대를 장악하다

릴리 엘시의 본명은 엘시 코튼이다. 숙박업과 양재를 겸했던 어머니와 연극계 종사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맨체스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일찍이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10세 무렵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1900년경부터 ‘릴리 엘시’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끼를 발산했으나, 실제 성격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이러한 내성적인 성향은 훗날 그녀가 겪게 될 정신적 고통의 씨앗이기도 했다.

3.《메리 위도우》와 전성기

그녀를 불멸의 스타로 만든 작품은 1907년 개봉한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The Merry Widow)》였다.

에드워드 시대의 연인 릴리 엘시 그림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릴리 엘시는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가 극 중에서 착용한 모자와 의상은 즉각적인 패션 유행을 선도했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와 삽화가들이 그녀의 미모를 캔버스에 담기를 원했다.

수많은 남성 팬이 그녀의 사진을 간직하며 흠모했지만, 정작 그녀는 대중의 광적인 관심과 스타로서의 삶에 큰 부담감을 느꼈다.

4.화려함 뒤에 가려진 불행한 결혼

업계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때, 그녀는 부유한 직물 제조업자의 아들인 이언 불로우 소령과 결혼을 발표하며 무대를 떠났다.

그러나 대중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던 그녀의 사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빈혈을 비롯한 잦은 병치레와 수차례의 수술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괴롭혔고, 아내가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남편과의 갈등은 정신적인 고통을 가중했다.

그녀는 간헐적으로 자선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으나, 결혼 생활 내내 우울증과 소외감에 시달려야 했다.

5.비극으로 끝난 말년

대중에게는 영원한 ‘메리 위도우’였지만, 인간 릴리 엘시의 삶은 고독했다.

1920년 남편과 함께 시골로 이주하여 사냥과 사교 모임을 즐기며 평범한 삶을 시도했으나, 결국 1930년 이혼과 함께 극심한 신경쇠약을 겪게 된다.

그녀의 정신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요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뇌 수술까지 받는 비극을 맞이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가장 빛났던 스타는 세인트 앤드류 병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으며, 76세를 일기로 골더스 그린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릴리 엘시는 이후 몇 차례 복귀를 시도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으나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시각적 기록들은 오늘날에도 에드워드 시대의 미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196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조용한 삶을 유지했으나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우아함과 세련미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릴리 엘시는 차가운 무대 조명 아래서 가장 빛나던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분투했던 고독한 예술가였으며 그 시대를 상징하는 영원한 뮤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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