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영원한 대결, 페르시아 신화의 세계

페르시아 신화

1.그리스 로마 신화에 가려진 거대한 원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화는 대부분 제우스가 다스리는 올림포스의 이야기거나, 오딘과 토르가 등장하는 북유럽의 이야기다.

페르시아 신화

하지만 서양 문명의 뿌리 깊은 곳, 특히 ‘선과 악’이라는 개념의 기원을 파고들면 우리는 반드시 페르시아 신화 그것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 이란 고원에서 피어난 이 거대한 서사는 단순히 옛이야기가 아니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와 융합되며 체계화된 페르시아 신화는 훗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물론 현대의 수많은 판타지 문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적 저수지다.

화려한 문명만큼이나 장대한 그들의 신화는 빛과 어둠이라는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2.선과 악의 완벽한 대립, 이원론적 세계관

페르시아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이원론이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인간처럼 질투하고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면, 페르시아의 신들은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하다.

세상은 지혜와 빛, 선을 상징하는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와 거짓, 어둠, 악을 상징하는 파괴신 ‘앙그라 마이뉴(아흐리만)’의 전쟁터다.

이 두 세력의 싸움은 태초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인간은 이 거대한 우주적 전쟁에서 구경꾼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을 택해 아후라 마즈다를 도울 수도, 악을 택해 파괴에 일조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에게 도덕적 책무를 부여하는 매우 진보적인 신화관이었다.

2.1.영지주의와 마니교, 극단으로 치달은 이분법

페르시아 신화 그것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더 극단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를 계승한 ‘마니교’다.

이들은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는 것을 넘어, 아예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라고 규정했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물질세계가 신들의 전쟁터였다면, 영지주의에서 물질세계는 악한 신이 만든 감옥이다.

따라서 인간의 목표는 더러운 육체를 벗어나 영적인 깨달음(Gnosis)을 얻어 탈출하는 것이 된다.

이는 훗날 기독교 이단 논쟁의 핵심이 되기도 했으며, 서구 문명 깊은 곳에 ‘정신 우위, 육체 혐오’라는 사상적 뿌리를 내리게 했다.

2.2.플라톤, 이상과 현실을 나누다

종교가 아닌 철학의 영역에서도 이원론은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대표적이다. 그는 세계를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현상계(우리가 사는 현실)’와 영원불변하며 완벽한 진리인 ‘이데아계’로 나누었다.

이데아론
Coloring page. Scheme of structure of underground mole tunnels

동굴의 비유가 말해주듯, 눈에 보이는 현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은 서양인들의 사고구조를 근원적으로 갈라놓았다. 이성(Reason)과 감성, 본질과 현상이라는 서양 철학의 이분법적 도식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는 선악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가치 우위의 문제였으나, 세상을 둘로 쪼개어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이원론의 계보다.

2.3. 동양의 음양론 대립이 아닌 조화

서양과 중동의 이원론이 ‘투쟁’과 ‘분리’를 전제로 한다면, 동양의 이원론은 결이 다르다.

도가 사상과 성리학의 기초가 되는 ‘음양론(Yin-Yang)’ 역시 세상을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기운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음과 양은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처럼 서로를 없애야 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이들은 서로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순환하고 섞이며 조화를 이룬다.

페르시아 신화 이원론이 ‘전쟁’이라면, 동양의 이원론은 ‘춤’에 가깝다. 이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문화권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대조다.

2.4. 기독교 윤리적 이원론의 완성

현대인에게 가장 익숙한 이원론은 아마도 기독교적 세계관일 것이다.

신과 사탄, 천국과 지옥의 구조는 페르시아 신화의 영향력을 강하게 암시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페르시아 신화 속 악신은 선한 신과 거의 대등한 힘을 가진 태초부터의 경쟁자지만, 기독교의 사탄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타락한 천사일 뿐이다.

즉, 존재론적으로는 유일신 사상(일원론)이지만, 인간의 도덕과 윤리적 실천 영역에서는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는 이원론적 구조를 차용한 셈이다.

이를 ‘윤리적 이원론’이라 부르며, 이는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권선징악의 모티프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3.왕들의 서사시 ‘샤나메’와 영웅 로스탐

페르시아 신화 속 샤나메

신들의 전쟁이 우주적 차원의 이야기라면, 지상에서는 영웅과 왕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페르시아의 시성 피르다우시가 집대성한 대서사시 ‘샤나메(왕들의 책)’는 신화와 역사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영웅은 단연 ‘로스탐’이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로스탐은 사자의 머리 가죽을 쓰고 다니며 초인적인 힘으로 숱한 괴물들을 물리친다.

하지만 그의 서사는 비극적이다.

전장에서 적장으로 만난 자신의 아들 소흐랍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되는 비극은 페르시아 문학의 정수이자, 훗날 서구 문학의 비극적 구조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4.상상력의 보고, 환상종과 마법

현대 판타지 장르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비한 생명체의 기원도 페르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거대한 새 ‘시무르그’다. 모든 지혜를 알고 있으며 영웅을 양육하고 치유하는 이 신조는 불사조 피닉스의 원형에 가깝다.

또한 사람의 얼굴에 사자의 몸, 전갈의 꼬리를 가진 괴수 ‘만티코어’ 역시 페르시아 전설에서 유래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나 마법 램프 같은 소재들 역시 ‘천일야화’를 통해 알려졌지만, 그 뿌리는 고대 페르시아의 풍부한 상상력과 마법적 세계관에 닿아 있다.

이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리자로서 이야기 속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5. 현대 판타지와 종교에 남긴 유산

페르시아 신화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신화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서 그려지는 포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대립,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악 사우론에 맞서는 구조는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의 전쟁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것이다.

앙그라 마이뉴는 모든 악의 근원이자 파괴의 영으로 불린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에서 가장 어둡고 두려운 존재는 단연 앙그라 마이뉴다.

중세 페르시아어로는 ‘아흐리만’이라고도 불리는 이 존재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의 대척점에 서 있는 ‘파괴의 영’ 그 자체다.

세상의 모든 선함, 생명, 진리가 아후라 마즈다에게서 나온다면, 세상의 모든 악함, 죽음, 거짓, 질병은 앙그라 마이뉴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빛을 질투하고 끊임없이 피조물들을 타락시키려 하는 순수한 악의 결정체다.

앙그라 마이뉴의 가장 큰 특징은 독창적인 창조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오직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선한 창조물을 모방하여 그것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아후라 마즈다가 생명을 만들면 그는 죽음을 만들고, 아름다운 여름을 만들면 혹독한 겨울을 만들어냈다.

건강에는 질병으로, 평화에는 전쟁으로 응수하는 식이다. 즉, 그의 권능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유(有)’를 부패시키고 비틀어버리는 기생적인 힘이다.

5.1. 결정적 차이

흔히 기독교의 사탄(루시퍼)과 비교되곤 하지만, 그 성격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탄은 본래 신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으나 교만으로 인해 타락한 존재다. 반면, 앙그라 마이뉴는 태초부터 악하게 존재했다. 그는 아후라 마즈다의 피조물이 아니며, 빛과 쌍벽을 이루는 독립적인 어둠의 실체다.

이는 악이 신의 계획이나 실수가 아니라, 선과 대등하게 맞서는 우주적 원리라는 페르시아 특유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명확히 보여준다.

비록 앙그라 마이뉴가 세상에 고통과 거짓을 뿌리고 있지만, 페르시아 신화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페르시아 신화 그것은 그의 끝을 명확히 예고한다. 긴 시간 동안 빛과 어둠의 전쟁이 계속되겠지만, 결국 최후의 날에 앙그라 마이뉴는 무력화되어 심연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인간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을 통해 선을 선택할 때마다 앙그라 마이뉴의 힘은 약해진다. 결국 그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빛의 승리를 돋보이게 하는 거대한 시련일 뿐이다.

또한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구세주(사오샨트)의 도래와 같은 개념은 페르시아 신화에서 발원해 전 세계 종교관의 골격을 형성했다.

우리가 페르시아 신화를 읽는 것은 잊혀진 제국의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선과 악’이라는 거대한 질문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5.1. 세계 종교의 DNA에 새겨진 페르시아의 인장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단순히 영토만 넓은 나라가 아니었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거대한 교차로였던 페르시아는 물건뿐만 아니라 ‘사상’을 수출하는 거점이었다.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와 그 신화적 세계관은 인접한 문명권에 스며들었고, 놀랍게도 오늘날 세계 4대 종교라 불리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의 핵심 교리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믿고 있거나 흔히 들어온 종교적 개념의 뿌리를 캐다 보면, 필연적으로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적 유산과 마주하게 된다.

5.2.유대교, 부족 신앙에서 우주적 종교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것은 유대교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해 준 것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었다.

이 역사적 만남은 유대교의 성격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전까지의 유대교가 현세의 복과 부족의 안위를 비는 성격이 강했다면, 페르시아 문명과 접촉한 이후 비로소 ‘종말론’과 ‘내세관’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의 단순한 심부름꾼이었던 ‘사탄’이 신에게 대적하는 악의 화신으로 변모한 것은 페르시아의 악신 ‘앙그라 마이뉴’의 영향이 지대했다.

선과 악의 대결, 최후의 심판이라는 거대 서사는 페르시아가 유대교에 선물한 새로운 안경이었다.

5.3. 기독교와 메시아, 그리고 천국과 지옥

기독교에 남긴 흔적은 더욱 구체적이다.

페르시아 신화 그것에는 세상의 끝날에 악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원할 구세주 ‘사오샨트’가 등장한다.

처녀 잉태를 통해 태어나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고 최후의 심판을 이끈다는 사오샨트의 도식은 기독교의 메시아(그리스도) 사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천국(낙원)과 불타는 지옥의 이미지는 조로아스터교의 사후 세계관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Magi)’들조차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는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 종교관의 토양 위에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5.3.3.우연이라기엔 너무나 닮은 초상화

페르시아 신화 속 사오샨트

종교학자들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예수의 원형이 사오샨트인가?’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가 조로아스터교의 구세주 ‘사오샨트’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오샨트가 제시한 구원자의 이미지가 유대교를 거쳐 초기 기독교의 메시아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학문적 사실이다.

두 존재 사이에는 단순히 ‘세상을 구한다’는 목적을 넘어, 탄생부터 과업, 그리고 세상의 끝을 다루는 방식까지 소름 돋을 정도의 유사성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통점은 바로 ‘비범한 탄생’이다.

기독교의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런데 이 ‘처녀 잉태’라는 모티프는 사오샨트 신화에서 먼저 등장한다. 전설에 따르면 조로아스터의 씨앗(정액)은 함(Hamun) 호수에 보존되어 있는데, 종말의 때가 가까워지면 한 처녀가 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다가 잉태하여 사오샨트를 낳게 된다고 한다.

남녀의 물리적 결합 없이, 신성한 힘이나 예지 된 섭리에 의해 처녀의 몸에서 구원자가 태어난다는 설정은 두 종교가 공유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다.

5.3.4.죽음의 정복과 최후의 심판

사오샨트의 역할은 단순히 현세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된 임무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다.

사오샨트가 도래하면 죽었던 모든 인간이 다시 육체를 입고 일어나며,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르는 심판이 열린다.

이는 예수가 재림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고 육체의 부활을 이끈다는 기독교의 종말론과 판박이다.

특히 심판의 과정에서 악을 영원히 멸하고 선한 자들에게 영생을 부여한다는 구조는, 당시 순환적 시간관(윤회 등)을 가졌던 다른 고대 종교들과 달리 ‘직선적 시간관’과 ‘역사의 완결’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공통점이다.

5.3.5.프라쇼케레티와 천국, 완성된 세계

사오샨트가 이끄는 종말 이후의 세상은 ‘프라쇼케레티(Frashokereti)’라고 불린다.

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완전한 갱신’ 혹은 ‘경이로움’을 뜻한다.

모든 악과 거짓이 사라지고, 질병과 죽음이 없는 완벽한 육체를 지닌 채 신과 함께 영원히 사는 세상이다.

이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새 하늘과 새 땅’, 눈물도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없는 천국의 모습과 완벽하게 겹친다.

두 종교 모두 구원을 영혼의 탈출이 아니라, 오염된 세상이 정화되어 태초의 완벽함을 되찾는 회복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페르시아의 사오샨트가 유대-기독교의 메시아에 영향을 주었을까?

그 연결고리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사건이다.

나라를 잃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은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이때 유대교 지도자들은 페르시아의 고도로 발달한 신학, 즉 선악의 대결 구도와 종말론, 구세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전까지 민족적 영웅이나 왕을 뜻했던 유대교의 ‘메시아’ 개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우주적 심판자이자 영적 구원자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프라쇼케레티와 북유럽 신화의 나그나로크도 묘한 평행이론을 이룬다.

고대 페르시아 신화 속 종말론 ‘프라쇼케레티(Frashokereti)’와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Ragnarök)’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두 신화 모두 세상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거대한 겨울이나 재해 같은 전조가 나타나며, 선과 악의 세력이 최후의 전쟁을 벌인 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구조를 공유한다.

이는 두 문화권이 ‘인도-유럽어족’이라는 거대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세상의 끝을 상상하는 방식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비교 사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정적인 차이 또한 존재한다.

5.3.5.1녹아내리는 금속과 수르트의 불검

가장 시각적으로 유사한 지점은 ‘불에 의한 정화’다.

페르시아의 프라쇼케레티가 도래하면, 산속의 금속이 녹아내려 거대한 용암의 강을 이룬다.

모든 인간은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선한 자에게는 따뜻한 우유처럼 느껴지지만 악한 자에게는 뼈와 살을 태우는 고통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부정함이 씻겨 나간다. 라그나로크 역시 불의 거인 수르트가 휘두르는 불검에 의해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온 세상이 불타오르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두 신화 모두 낡고 병든 세상을 ‘불’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소독하고 리셋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평행이론을 이룬다.

결정적인 차이는 전쟁의 결말, 특히 ‘신의 운명’에서 갈린다. 프라쇼케레티는 철저히 낙관적이다.

선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그의 군대는 악의 무리를 완벽하게 제압한다. 신은 죽지 않으며, 오히려 승리자로서 영원한 왕좌를 굳건히 한다. 반면 라그나로크는 비장미가 흐르는 비극이다.

오딘은 늑대 펜리르에게 잡아먹히고, 토르는 뱀 요르문간드와 싸우다 독에 중독되어 죽는다.

신들이 영생불사의 존재가 아니라 운명 앞에서는 멸망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페르시아가 ‘절대선의 승리’를 강조했다면, 북유럽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그에 맞서는 용기’를 강조했다.

종말 이후의 풍경도 미묘하게 다르다.

‘프라쇼케레티’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완전하게 만듦’, ‘경이롭게 만듦’이라는 뜻이다.

페르시아 신화 속 프라쇼케레티

즉, 기존의 세상이 파괴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악이라는 불순물이 제거되어 태초의 완벽한 상태로 ‘복원’되는 것이다. 시간은 멈추고 영원한 현재가 지속된다.

하지만 라그나로크는 ‘파괴 후 재건’에 가깝다. 옛 세상은 완전히 수장되고, 바다에서 솟아오른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신(발두르 등)과 인간 두 명(리프와 리프트라시르)이 다시 문명을 시작한다.

페르시아가 역사의 ‘완성’을 말한다면, 북유럽은 역사의 ‘순환’을 암시한다.

결국 두 신화는 인간이 죽음과 종말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대변한다.

프라쇼케레티는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며 세상은 완벽해질 것”이라는 도덕적 확신과 희망을 준다. 이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직선적 시간관과 천국 개념으로 이어졌다.

반면 라그나로크는 “세상은 멸망할지라도 씨앗은 남아 다시 싹을 틔울 것”이라는 자연의 섭리와 생명력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형태는 비슷해 보이지만, 프라쇼케레티는 ‘구원’을 노래하고 라그나로크는 ‘재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인류 종말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5.3.6.원형(Archetype)으로서의 가치

사오샨트를 예수의 ‘표절 원본’이라고 깎아내리거나, 반대로 예수가 사오샨트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둘 다 편협한 시각이다.

사오샨트는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정의로운 심판자’와 ‘죽음을 이기는 구원자’라는 염원이 종교적으로 구체화된 최초의 모델, 즉 원형(Archetype)이다.

페르시아가 쏘아 올린 이 거대한 구원의 서사는 유대 광야를 지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라는 상징과 결합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의 핵심 교리로 꽃피우게 된 것이다.

5.4. 로마군을 사로잡은 미트라 신앙

종교뿐만 아니라 서양 신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로마 제국도 페르시아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페르시아의 태양신이자 계약의 신인 ‘미트라(Mitra)’는 로마로 건너가 군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미트라교’라는 거대한 밀교로 발전했다.

로마 황제들조차 심취했던 이 종교는 12월 25일을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로 기념했다. 훗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 날짜는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로 대체되었다.

일요일을 ‘Sunday(태양의 날)’로 부르며 쉬는 관습 또한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던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5.5. 이슬람교, 지리적 정복과 문화적 흡수

이슬람교는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켰지만, 역설적으로 페르시아의 신화적 구조를 대거 흡수했다.

특히 사후 세계로 가는 다리인 ‘친바트 다리’의 개념은 이슬람의 ‘시라트 다리’로 계승되었다.

생전에 지은 죄에 따라 다리의 폭이 면도날처럼 좁아지거나 넓어진다는 설정은 두 신화가 완전히 일치한다.

또한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올리는 의식이나, 정결을 중시하는 종교적 관습 역시 조로아스터교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이나 시아파의 교리 속에도 페르시아 고유의 ‘빛의 철학’은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5.6.불교, 미래불 미륵과 아미타불의 광명

동쪽으로 뻗어나간 페르시아의 영향력은 대승 불교에도 닿았다.

불교의 구세주라 할 수 있는 ‘미륵불(Maitreya)’ 사상은 이름부터 페르시아의 계약의 신 ‘미트라’와 어원적 연관성을 가진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하러 온다는 미래불 신앙은 페르시아의 구세주관이 불교와 융합된 결과로 해석된다. 또한 서방 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상징하는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 역시 빛을 숭배했던 페르시아 종교의 특징이 실크로드를 타고 불교 교리에 스며든 사례로 꼽힌다.

6.인류 정신사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이처럼 페르시아 신화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문명의 혈관이었다.

그들은 제국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해 전파했다.

현대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천국과 지옥, 구세주, 선과 악의 대립 같은 개념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이란의 고원에서 타올랐던 성화(聖火)의 불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각기 다른 문화의 장작을 태우며 만들어낸 거대한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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