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룻과 밧세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다윗 왕조의 역사는 조금 독특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대신,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노출하고 신학적으로 봉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스라엘 최고의 왕조가 탄생하는 과정에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가진 두 여인이 존재한다. 바로 다윗의 증조모 룻(Ruth)과 다윗의 아내 밧세바(Bathsheba)다.

성경 문학, 특히 룻기와 사무엘하 12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작가들이 왕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서사적 세탁(Narrative Laundering)’ 기술을 구사했는지 목격하게 된다.
1. 스캔들: 이방의 피와 불륜의 씨앗
정상적인 고대 사회라면 왕의 혈통에서 반드시 지워야 할 두 가지 오점이 있다. 바로 ‘혼혈’과 ‘불륜’이다. 성경 속 룻과 밧세바 이들이 대표적이다.
룻기는 다윗 왕조의 뿌리에 ‘모압 여인’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신명기 율법(23:3)에 따르면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저주받은 혈통이다.
그러나 룻기는 이 이방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묘사하며, 그녀의 헌신(헤세드)을 통해 율법적 금기를 정서적 감동으로 돌파한다.
사무엘하 12장은 더 노골적이다. 솔로몬은 다윗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와의 간통, 그리고 살인 교사라는 끔찍한 범죄의 결과로 맺어진 관계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정치적 약점을 넘어 왕조의 도덕적 파산 선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성경에선 이 스캔들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 돌파한다. 바로 ‘죽음’을 통한 대가 지불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만회하려한다.
2. 등가교환: 생명은 죽음을 먹고 자란다
두 텍스트는 냉혹하리만치 철저한 ‘생명과 죽음의 등가교환’ 구조를 공유한다.
새로운 왕(혹은 조상)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죽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룻기에서 다윗의 조상 오벳이 태어나기 위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말론, 기련)은 이방 땅에서 객사해야 했다.
가문이 완전히 ‘비워짐(Empty)’의 상태가 된 후에야, 하나님은 룻을 통해 그 가문을 다시 ‘채우신다(Full)’.
즉, 오벳은 죽은 자들의 무덤 위에서 피어난 꽃이다.
사무엘하 12장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된다.
솔로몬이 등장하기 전,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남편 우리야는 전쟁터에서 죽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다윗의 계략이었고, 불륜으로 태어난 첫 번째 아이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죽었다.
다윗은 “아이가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며 몸을 씻고 일어난다.
이 냉정한 태도는 죄의 대가가 지불되었음을 알리는 의식과도 같다.
과거의 죄(첫 아이)가 죽음으로 청산되었기에, 미래의 왕(솔로몬)은 깨끗한 상태로 태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3. 신의 도장: 여호와께서 사랑하셨다?
철저한 대가 지불 후, 성경은 마지막으로 ‘신의 개입’이라는 도장을 찍어 이들의 정통성을 확정한다.
룻기 4장 13절은 룻의 임신을 “여호와께서 임신하게 하시므로”라고 명시한다.
생물학적 결합을 넘어선 신의 의지라는 것이다.
사무엘하 12장 24-25절은 한술 더 뜬다.
솔로몬이 태어나자마자 나단 선지자가 등장해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셨다”고 선언하며 ‘여디디야’라는 신성한 이름을 부여한다.
이것은 당시 백성들과 정적들을 향한 강력한 정치적 선전(Propaganda)이다.
“너희는 룻이 모압 여인이라고 비난하는가? 밧세바가 불륜녀라고 손가락질하는가? 보라, 신께서 이 아이들을 선택하셨고 사랑하셨다. 그러니 입을 다물라.”
그런 의미로 읽힌다.
4.약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
룻기와 사무엘하 12장은 같은 목적을 향해 달린다.
그것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권이 인간의 순수한 혈통이나 도덕적 완벽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오히려 인간의 가장 수치스러운 실수와 비극(죽음)을, 신이 개입하여 ‘왕조의 영광’으로 역전시켰다는 것이다.
다윗은 첫 아이의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고 솔로몬을 얻었다.
이 비정한 교환 공식은 훗날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의 왕권을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되었다.
이토록 정교하고 서늘한 ‘왕좌의 세탁’ 과정이 또 있을까.
성경은 단순한 경전이기 이전에, 인간 욕망의 심연과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무서운 리얼리즘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