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에서 밤 9시의 의미
동양철학에서 밤 9시 즉 해시는 물이 극대화되는 시간대이다. 명리학에서 끝맺음과 새로운 시작의 기운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본다. 따라서 사람이 밤 9시 무렵에 죽는다면 다세계이론과 혼의 이동 관점에서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동양철학에서 밤 9시의 의미 및 해석
동양철학에서 밤 9시는 해시에 해당한다. 지지 해는 물을 의미한다. 방향은 북서쪽이며 음양 속성은 음이 강해지는 시간대이다. 따라서 밤 9시는 음의 기운이 극대화되기 직전 단계이다. 물은 존재의 시작이자 마무리에 해당한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시작하였고 모든 죽음도 물로 돌아간다. 물은 무와도 같다.
동양철학 및 의학에서는 시간마다 특정 장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 중 해시는 삼초와 연관된다.
삼초는 세 개의 불 혹은 세 부분으로 나뉜 곳이란 뜻이다. 신체 내부를 세 구역 그러니까 상초, 중초, 하초로 나누어 기, 수분, 음식물 등이 어떻게 이동하고 순환하는지 설명하는 개념이다.
정리하면, 삼초는 수분대사와 면역, 체온 조절 등을 상징하는 경락이다.
실제 장기는 없지만 기의 흐름과 순환 체계로 여겨진다. 따라서 밤 9시에는 몸이 내부 에너지 순환을 정비하고 노폐물 배출과 재정비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해석된다.
도가사상이나 선도 수행에서는 이 시간 이후부터는 말을 줄이고 호흡을 고르게 하며 정(情),기(氣),신(神)을 보존하는 시간으로 여긴다. 그래서 밤 9시 이후로 말이 많으면 기운이 흩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동양철학에서는 밤 9시를 수양, 명상, 독서에 적합한 시간으로 권장했다.
가장 깊은 음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밤 9시는 활동이 끝나고 모은 것이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시점으로 본다.
죽음의 상징적 문턱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동양철학에서 죽음은 소멸이 아닌 전환이다.
그래서 밤 9시에 죽는다는 것은 외부 활동 즉 양의 작용이 끝나고 정신적 내면세계로 들어가거나 다음 생명주기를 위한 정리와 재정비의 시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환생 전야 해시의 죽음
밤 9시 해시는 하루의 마지막 순환이 시작되는 시간대이면서, 동시에 깊은 밤으로 들어가는 경계의 시간대이다.
특히 지지 해(亥)는 12지지에서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며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글자다.
노자의 귀허 즉 허무로 돌아가는 개념처럼 죽음은 하나의 귀환이면서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이 시간대의 죽음은 한 삶을 마무리하면서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환생 전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 밤 9시 해시의 해석
밤 9시는 낮과 밤의 흐름에서 완전히 밤으로 접어드는 시간대이다. 만약 인간이 죽는 시간이 환생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낮과 밤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에 떠난 영혼은 어두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밤 9시 무렵에 죽은 영혼은 특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밤 9시에 죽은 영혼의 특성
밤 9시에 죽은 영혼의 특성은 완전히 깊은 밤과는 다르게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이 있는 상태로 봐도 된다.
이를 기반으로 몇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명확하게 밤 9시 무렵에 죽은 자는 환생을 기다리기 이전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계를 경험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다차원 중에서도 낮의 기억이 남아있는 세계와 밤의 깊은 어둠 속 세계 사이에서 태어나는 거다.
혹은 밤 9시 무렵에 죽은 사람은 환생을 해도 자신의 전생 일부를 기억하거나 이전 삶의 영향을 받는 존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시간은 완전히 문이 닫히기 전이라서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 생이 있다면 죽기 전의 기억을 희미하게 간직한 채 태어나는 존재로 가설이 가능하다.
특히 밤 9시에 죽은 사람은 자신이 어느 세계에 속하는지 모르는 영혼이 된다.
완연한 어둠이지만 밤 9시는 죽음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죽은 영혼은 자신이 어느 세계에 속하는지 모르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즉, 이 시간대에 죽은 영혼은 두 개의 차원에 걸쳐 있는 존재가 된다.
한쪽 세계에서는 이미 죽은 자이고, 다른 세계에서는 아직 완전히 태어나지 않은 존재로 남을 수 있다.
두 개의 문을 열고 환생하는 영혼
만일 다차원을 이동하는 존재들이 있다면, 밤 9시에 죽은 영혼은 두 개의 차원에서 동시에 태어나는 존재로 설정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환생은 한 세계에서만 이루어지지만, 밤 9시에 죽은 영혼은 다중 세계에서 중첩된 존재가 될 수 있다.
즉, 한 차원에서는 아이로 태어나고 다른 차원에서는 죽은 자의 잔상처럼 남아있는 거다.
경계적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
이렇듯 밤 9시의 의미와 밤 9시에 죽는다는 것은 경계적 존재가 된다는 의미이다. 밤 9시는 완전히 문이 닫히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이 죽기 좋은 가장 최적의 시간대가 밤 9시 일수도 있다.
밤 9시는 음기가 강해지고 모든 생명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며 모든 기운이 안으로 돌아가는 순간 삶의 에너지가 소멸이 아니라 귀환을 하는 거다.
도가에서 말하는 죽음은 자연으로의 회귀이다. 죽음이란 억지나 비극이 아니라 과도한 작용을 멈추고 본연으로 돌아가는 거다. 밤 9시는 그런 전환의 문턱이다.
움직임은 끝나고 침묵이 시작되는 그 사이. 그래서 불의의 사고가 아닌 고령의 노인이 밤 9시에 죽었다면 마치 조용한 물가에 풀잎 하나 떨어지듯 세상과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동양철학에서 밤 9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
밤 9시는 깊은 명상과 귀환의 시간이다. 동양철학에서 수행자들은 이 시각이면 말과 생각을 줄이고 기운을 수렴하며 하늘과 하나가 되는 죽음의 훈련을 해왔다.
노자는 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다, 라고 하였다.
이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도의 흐름 속 하나의 되돌아감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밤 9시는 생명이 가장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이다. 기운은 돌아가고 말은 멎으며 마음은 허무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