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왕 만들기:사무엘의 정치적 야망과 사울의 비극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무엘의 정치적 야망 본색

고민하는 사무엘과 번민하는 사울을 비교한 삽화

우리는 오랫동안 사무엘기를 신앙의 교훈서로만 읽어왔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요구에 응답해 왕을 세워주시고, 사무엘이라는 경건한 예언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울을 왕으로 삼았다는 서사 말이다.

하지만 정치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이는 종교 권력세속 권력 사이의 치밀한 정치 드라마이며 한 노련한 정치가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교묘한 권력 게임의 기록이다.

1. 위기에 몰린 기득권자, 사무엘

1.1.사무엘의 절대 권력 구조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사사 시대의 마지막 지도자로서 그는 다음과 같은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 종교적 권위 (예언자)
  • 사법적 권력 (사사)
  • 군사적 지휘권

현대로 치면 대법원장, 국무총리, 합참의장을 겸임한 셈이다.

1.2.사울이 왕이 되기 전 사무엘의 권력 승계의 위기

그런데 그의 엘리트 코스와는 달리 그의 아들들인 요엘아비야가 뇌물을 받고 판결을 왜곡하며 백성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렸다. 세습 정치의 꿈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세습을 할 생각을 한 것도 조금 기가 차긴 하다.

설상가상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백성들은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최초의 고이임을 벤치마킹한 사례로 꼽는다. 사무엘 입장에서는 당연히 골치가 아픈 순간이었다.

2.교묘한 권력 분점 전략

사울에게 기름을 붓는 사무엘의 모습 삽화

2.1.허수아비 왕을 통한 간접 통치의 고안

사무엘의 해법은 교묘하고 기발했다. 겉으로는 백성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척하면서도, 실질적 권력은 여전히 자신이 쥐고 있는 구조를 만들어 버렸다.

그는 왕정제를 도입하되, 왕은 자신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 세우는 것. 현대 정치학 용어로 말하면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실세 총리’가 되는 전략을 택했다.

2.1 적절한 후보의 선택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후보가 필요했다.

  • 백성들의 요구: ‘강력한 왕’
  • 사무엘의 요구: ‘조종 가능한 왕’

이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사울이었다.

2.2. 사무엘의 관점과 백성의 관점

사무엘은 정치적 경험도 전무하고 정치적 기반도 없으며 국정 운영도 검증 받지 못한데다 자신에게 은인처럼 충성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백성의 관점으로 그들에게 내세우기 좋은 왕은 키가 크고 잘생기고 겉보기에는 왕의 위엄을 충족한 것처럼 보여야 했다. 즉, 시각적 만족도가 높아야 했다. 한마디로 꼭두각시 혹은 허수아비를 찾았는데 사울을 본 순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던 거다. 물론 처음부터 사울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암나귀를 찾아 나서다 사무엘을 보고 그가 결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황상 사무엘이 사전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3. 종교적 포장으로 가린 정치적 계산

3.1.하나님의 뜻이라는 수사학

사무엘은 이 모든 정치적 계산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종교적 수사로 포장했다.

  • 사울을 만난 것 → 하나님의 인도
  • 그를 왕으로 선택한 것 → 하나님의 명령
  • 나중에 그를 버리는 것 → 하나님의 심판

이는 고도로 세련된 정치적 수사학였다.

3.2. 완성도 높은 종교적 권위 활용

종교적 권위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이런 방식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사무엘의 경우 그 완성도가 특별히 높아 보인다.

3.3. 미리 준비된 면피용 카드

그는 왕을 세우면서도 동시에 “왕정제의 폐해”를 미리 경고함으로써, 나중에 왕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내가 미리 말했지 않았나”라고 할 수 있는 면피용 카드까지 미리 준비해두었다.

4.사울의 딜레마: 왕인가, 꼭두각시인가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사울왕

사울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분명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사무엘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중요한 결정마다 사무엘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종교적 권위는 여전히 사무엘이 독점하고 있었다.

4.1 길갈 사건의 권력 구조 모순

특히 길갈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런 권력 구조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1. 상황: 블레셋과의 전쟁 임박
  2. 규칙: 제사는 사무엘이 드려야 함
  3. 문제: 사무엘이 약속 시간을 어김
  4. 결과: 군사들 이탈, 적군 눈앞
  5. 사울의 선택: 직접 제사 집행

4.2. 현실적 딜레마의 상황

이 순간 사울이 직면한 딜레마는 현실적이었다.

  • 군사적 지휘관으로서 즉시 행동 필요
  • 종교적 절차 무시 불가능

결국 그는 직접 제사를 드렸고, 뒤늦게 나타난 사무엘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건 사무엘의 너무 선 넘은 행동이 아닌가? 왕은 분명히 사울이었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은 사무엘이었다. 게다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인데 사무엘한테 혼이 났다? 명령을 위반한 자는 사울이 아닌 사무엘로 보인다.

5. 제2의 허수아비 찾기: 다윗 프로젝트

5.1.차기 주자 키우기 전략

사울이 점점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자, 사무엘은 새로운 카드를 준비했다. 그는 바로 다윗이었다. 흥미롭게도 사무엘은 사울을 완전히 몰아내기 전에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삼았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 말하는 ‘차기 주자 키우기’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5.2. 더 이상적인 후보, 다윗

다윗은 사울보다도 더 이상적인 후보였다. 어리고 조종하기도 쉬웠고 사회적 지위도 더 낮았고 사무엘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다. 그러면서 사울보다는 카리스마와 능력을 겸비했으니 백성들로 부터 인기는 따논 당상이었다. 그러니까 다윗은 사무엘 입장에서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6.현대적 함의: 종교 권력의 정치적 야망

사무엘의 이야기는 고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 권위를 등에 업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다.

6.1. 역사 속 유사 사례들

6.1.1. 중세 유럽의 교황권과 황제권 갈등

  • 교황과 황제 간 권력 투쟁
  • 종교적 권위의 세속 권력 개입

6.1.2. 이란의 신정체제

  • 종교 지도자의 정치적 최고권력
  • 대통령의 실질적 권한 제약

6.1.3. 현대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 개입

  • 대선 후보 지지 선언
  • 정치적 발언과 신도 동원

6.2. 권력 승계 실패와 대리인 통치

특히 권력 승계에 실패한 기득권 세력이 ‘대리인’을 통해 간접 지배를 시도하는 패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지만 실질적 자율성은 제약받는 지도자들의 딜레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7.백성만 피해자

성경에는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자 마뜩찮아 하고 허락은 하되 교훈은 주겠다는 뉘앙스로 그려진다. 감히 신에게 대적해? 이러면서 괘씸죄를 적용한 거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이 그랬을까? 성경에는 사울에게 다른 마음을 주었다고 하고 그에게 징조인지 예언인지를 주었다고 했지만 관련 에피소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사울은 분명히 비극적인 왕이었다. 왕이 되었지만 진정한 왕이 될 수 없었고 권력을 가졌지만 온전히 행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하지만 더 큰 피해자는 백성들이었다. 왕을 만들어 나라를 잘 살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더니 기득권 사무엘의 계략에 놀아난 거다.

사무엘은 못난 왕을 뽑아 놓고 셈통이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왕정제의 폐해를 경고했다며 백성을 탓하였다. 사무엘은 진정한 개혁을 원하는 백성을 위해 자리를 내어 줘야 했는데 그는 끝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놓지 않았다.

8.권력의 본질에 대한 성찰

사무엘과 사울의 이야기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포기하는 것의 어려움
  • 종교적 권위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위험성

8.1. 종교적 권위의 정치적 남용

특히 사무엘이 자신의 모든 정치적 계산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한 것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다.

8.2.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

이 이야기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 권력의 분산
  • 견제와 균형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모든 권력을 독점할 때의 위험성, 특히 그 권력이 종교적 권위까지 겸할 때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9. 역사는 반복된다

사무엘의 정치적 야망사울의 비극은 3천 년 전의 일이지만, 그 교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권력자들의 권력 유지 시도, 종교적 권위의 정치적 남용, 겉모습만 바꾸는 가짜 변화 등 한국 정치도 뿌리 깊은 구태 기득권자들이 대를 이어 판을 치고 있다.

9.1 진정한 지도자의 조건

진정한 지도자라면 사무엘 방식처럼 허수아비를 세워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후계자를 육성하여 건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도 많은 종교인들이 신의 뜻이라며 특정 정당의 정치인을 지지하는 등 수많은 개입이 난무하고 있다. 사울 같은 왕을 만들지 않으려면 구태 기득권 청산은 매우 시급해 보인다.

사울왕을 통해 본 권력의 실체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