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시대별로 패션은 아름답고 멋지게 변화하며 진화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시대별 기묘한 유행 패션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괴한 유행 뒤에는 숨겨진 욕망의 심리학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1.1960년대 윤복희의 미니 스커트

무릎 위 20cm의 혁명, 미니스커트 가수 윤복희가 계란 세례를 맞으며 가져왔다는 전설의 아이템이다.
이 시대는 정부가 자를 들고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했던 촌극의 시대였다. 보수적인 사회에 던진 가장 발칙하고 도발적인 저항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보다 몇 십 년 앞서 서양에서는 플래퍼 룩을 선보인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사회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윤복희가 한국에 입고 등장한 미니 스커트는 파격 그 자체였으며 세련된 유행을 선포한 것이지만, 당시 사회는 그녀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시대를 휩쓴 유행 패션 윤복희가 기괴한 것이 아닌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기묘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미니스커트는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Mary Quant)가 주도한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의 상징이자, 전 세계적인 여성 해방과 모더니즘의 표상이었다.
즉, 윤복희는 가장 최신 유행의 세련된(Sophisticated) 아이템을 입고 김포공항에 내린 것이다.
당시 기괴하고 촌스러웠던 것은 그녀의 패션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를 들이대며 단속했던 한국 사회의 ‘문화 지체(Cultural Lag)’ 현상이었다.
1.1. 글로벌 스탠다드와 유교적 엄숙주의의 괴리
1960년대 서구권에서 미니스커트는 실용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신여성의 상징이었다.
앙드레 쿠레주와 같은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이 앞다퉈 선보인 ‘미래주의’ 패션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유교적 엄숙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신체, 특히 여성의 다리를 드러내는 것은 풍기문란이자 도덕적 타락으로 간주되었다.
윤복희의 세련된 룩(Look)이 한국 땅에 닿는 순간, ‘최첨단 유행’이 아닌 ‘망측한 옷’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이토록 거대한 인식의 시차 때문이었다.
1.1.1.국가가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재던 코미디
시대를 휩쓴 유행 패션 중 가장 ‘기괴한’ 장면은 패션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 공권력이 여성의 무릎 위 길이를 자로 재고 경범죄로 처벌하던 풍경이다.
1973년 경범죄 처벌법이 개정되면서 경찰은 대나무 자를 들고 명동 거리를 활보했다.
‘무릎 위 20cm’라는 기준은 미적 기준이 아닌 통제의 기준이었다. 이는 개인의 취향과 신체의 자유를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발로였다.
지금의 시선으로 볼 때 진정으로 촌스러운 것은 윤복희의 짧은 치마가 아니라, 그 치마를 보며 침을 뱉고 계란을 던지거나(혹은 그렇다고 알려진), 파출소로 연행해가던 시대의 경직성이다.
이처럼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던진 충격은 한국 남성들의 이중적인 심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겉으로는 ” 세상 말세다”, “천박하다”라고 비난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파격적인 노출에 열광하고 훔쳐보는 관음증적 시선이 공존했다.
윤복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은 당당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촌스러운 조선의 여인이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를 향유하는 모던 걸이었다.
결국 미니스커트 소동은 세련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몸과 욕망을 억압하는 것만이 미덕이라 믿었던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정신적 후진성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2. 1970년대 나팔바지
1970년대의 시대를 휩쓴 기묘한 패션 대표적으로 나팔바지가 있다. 통굽 구두에 남녀 장발 단속을 피해 도망치던 청년들의 유니폼 같은 복장이었다.
이 역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우습지만, 당시에는 나름 특별 계층이 주도한 패션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60년대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대중에게 던진 ‘일방적인 충격’이었다면, 70년대 나팔바지(판탈롱)와 장발은 당시 대학생이라는 특정 계층이 주도한 ‘그들만의 리그’이자 ‘문화적 코드’였다.
1970년대의 대학생은 지금과는 달리 소수의 지성인이자 엘리트 집단이었다.
그들은 AFKN(주한미군방송)을 듣고 팝송 원판을 구해서 듣는, 서구 문명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던 계층이다.
즉, 나팔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나는 촌스러운 기성세대와 다르다”, “나는 서구의 자유주의 문화를 향유하는 지식인이다”라는 무언의 과시, 즉 ‘문화적 겉멋’이 깔려 있었다.
2.1. 엘비스와 히피,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
나팔바지의 기원을 엘비스 프레슬리의 화려한 점프슈트에서 찾는 것도 맞지만, 정신적인 뿌리는 서구의 ‘히피(Hippie)’ 문화에 더 닿아 있다.
기성세대의 질서와 전쟁을 거부하고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들의 펄럭이는 바지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신 체제라는 숨 막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엘리트 청년들은 서구의 히피 룩을 차용함으로써 심리적 해방감을 느꼈다.
그들에게 나팔바지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억압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 날개’와도 같았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통·청·맥(통기타, 청바지, 생맥주)’ 문화에서 나팔바지는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강의실보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던 그들에게, 활동성 좋고 파격적인 실루엣의 나팔바지는 일종의 ‘유니폼’이었다.
이는 분명 ‘겉멋’이었다. 하지만 그 겉멋은 당시 획일화된 군사 문화와 제복 사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비폭력적 저항 수단이기도 했다.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욕망, 서구의 세련됨을 안다는 우월감, 그리고 현실 도피적인 낭만이 뒤섞인 복합적인 산물이었던 것이다.
2.2.우스꽝스러움 뒤에 숨겨진 시대의 우울
현대인의 눈에 비친 70년대 사진 속 대학생들의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남자가 굽 높은 구두(로퍼)를 신고, 허벅지는 꽉 끼는데 종아리는 펄럭거리는 바지를 입은 채 장발을 휘날리는 모습은 분명 과하다. 그러나 그 기괴함은 그들이 처했던 시대가 그만큼 비정상적이었음을 방증한다.
말 한마디, 글 한 줄 마음대로 쓰기 힘들었던 시절, 청년들은 바지 통을 넓히고 머리카락을 기르는 아주 사소한 일탈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슬픈 겉멋이자, 시대가 낳은 서글픈 패션이었다.
3.1980년대 닭벼슬 앞머리
1980년대는 닭벼슬 앞머리와 얼룩덜룩한 돌청 바지가 소위 ‘좀 노는’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무스와 스프레이를 한 통 다 써서 앞머리를 닭벼슬처럼 딱딱하고 높게 세우는 것이 자존심의 척도였다. 하의는 락스통에 잘못 빠뜨린 듯 하얗고 얼룩덜룩하게 물이 빠진 ‘돌청(스노우 진)’을 입어야 진정한 멋쟁이 대접을 받았다.
70년대가 라디오와 통기타로 대변되는 청각과 텍스트 중심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시각적 충격이 지배하는 영상의 시대였다. 1980년 컬러 방송의 시작과 함께 대중은 마이클 잭슨의 화려한 재킷과 마돈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천연색’으로 목격했다.
더 이상 지성이나 철학이 멋의 기준이 아니었다. 얼마나 눈에 띄는지, 얼마나 화려한지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소위 ‘때깔’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3.1.지식인의 전유물에서 ‘날나리’의 하위문화로
70년대 나팔바지가 대학생이라는 엘리트 계층의 ‘지적인 허영심’이었다면, 80년대 닭벼슬 머리와 돌청(스노우 진) 패션은 철저히 10대 청소년과 소위 ‘노는 언니 오빠’들이 주도한 하위문화(Sub-culture)였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엄숙주의뿐만 아니라, 선배 세대인 70년대 학번들의 진지한 이념 논쟁에서도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학교 앞 분식집, 롤러장, 디스코텍을 근거지로 삼은 이들은 미국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을 흉내 내며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쾌락을 좇았다.
이는 패션의 향유 계층이 ‘상아탑’에서 ‘거리’로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하늘을 찌를 듯 세운 앞머리, 일명 닭벼슬 머리는 미국 팝 스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
당시 마돈나나 신디 로퍼, 듀란듀란 같은 스타들은 볼륨감 넘치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이것이 한국의 10대들에게 넘어오면서 더욱 과장되고 기괴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무스와 스프레이라는 신문물을 이용해 앞머리를 딱딱하게 굳힌 이 스타일은, 교칙과 두발 단속이라는 억압에 맞서 “나를 좀 봐달라”고 외치는 10대들의 시각적 비명이자 반항이었다.
3.1.1.청청 패션과 아메리칸 드림의 대중화
위아래를 모두 데님으로 입는 ‘청청 패션’, 특히 락스 물을 뺀 듯한 얼룩덜룩한 ‘돌청’의 유행은 미국 대중문화의 직수입 결과였다. 리바이스, 조다쉬, 뱅뱅 같은 브랜드가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브룩 쉴즈나 소피 마르소 같은 책받침 여신들의 스타일이 교과서가 되었다.
70년대 청년들이 청바지를 입으며 ‘저항’을 논했다면, 80년대 하이틴들은 청바지를 입으며 ‘멋’과 ‘자유’ 그 자체를 즐겼다.
비록 어른들이 보기엔 “근본 없고 천박한 미국 날나리 흉내”였을지라도, 그것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수 대중문화이자 하이틴 문화의 태동이었다.
4.1990년대 머리 위 선글라스
1990년대 가장 기묘한 패션 스타일을 꼽자면 머리 위 선글라스이다. 이는 풍요와 허세가 만난 지점으로 압구정 오렌지족의 탄생을 의미했다.
1990년대는 한국 사회가 전례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며 소비가 미덕이 된 시기였다.
소위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부유층 자녀들이 압구정동 거리를 점령했고, 그들의 패션은 곧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베르사체의 화려한 패턴, 게스(GUESS)와 캘빈 클라인의 로고,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슈트는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다수 젊은이는 이태원과 남대문에서 ‘짝퉁’을 사 입으며 그 욕망을 모방했다. 중요한 것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보여주기 식 과시욕이 지배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이하면서도 폭발적이었던 유행은 단연 ‘머리 위에 걸친 선글라스’였다.
1992년 드라마 <질투>의 최진실을 필두로, 당시 트렌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활용했다. 이 스타일이 유행한 심리적 배경에는 ‘여유로움의 과시’가 깔려 있다.
선글라스는 본래 휴양지에서나 쓰는 아이템이다. 이를 도심 한복판, 그것도 머리 위에 얹고 다닌다는 것은 “나는 지금 바쁘게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언제든 즐길 준비가 된 유한계급”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또한, 머리에 걸쳤을 때 선글라스 다리 부분의 명품 로고가 가장 잘 보인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4.1.배꼽티와 시스루, X세대의 도발
선글라스가 부의 과시였다면, 배꼽티(크롭티)와 시스루 룩은 기성세대의 엄숙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X세대’라 불린 신인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을 쿨함으로 여겼다.
룰라의 김지현이나 엄정화 같은 섹시 아이콘들이 과감한 노출 패션을 선보였고, 이는 일반인들에게도 빠르게 전염되었다.
1990년대 중반 유행한 ‘배꼽티’는 단군 이래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치렁치렁한 금목걸이와 굵은 벨트 역시 “나를 좀 봐!”라고 외치는 90년대 특유의 자기표현 욕구이자 자신감의 발로였다.
4.2.압구정 로데오, 유학파가 쏘아 올린 ‘LA 스타일’의 상륙
대한민국 패션의 1번지, 압구정 로데오의 전성기
1990년대 패션을 논할 때 ‘압구정동’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명동이 기성세대의 구도심이었다면,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신세대의 해방구이자 거대한 런웨이였다.
이곳에는 대형 백화점 브랜드가 아닌, 주인의 안목으로 해외에서 물건을 떼오거나 직접 제작해서 파는 ‘보세 옷가게’들이 즐비했다. ‘메이드 인 이태원’이나 ‘동대문’과는 차원이 다른, 소위 ‘물 건너온’ 감각을 파는 이곳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성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방학을 맞아 귀국한 ‘유학파’와 ‘교포’들이 있었다.
4.2.1.유학파, 그들이 가져온 ‘본토’의 바이브
당시 압구정 거리를 지배한 진짜 권력은 유학파들이었다.
혀를 굴리는 영어 발음, 제스처, 그리고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과감한 스타일링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잡지에서나 보던 미국의 스트릿 패션을 실시간으로 한국에 이식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는 졸부 스타일이 아니라, 헐렁함과 타이트함을 믹스매치하는 소위 ‘LA 스타일’ 혹은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룩’이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대중은 이들을 흉내 내기 위해 압구정 보세 가게를 드나들었다.
유학파 남성들이 전파한 가장 충격적인 패션은 바로 ‘런닝 셔츠’의 외출복화였다.
속옷으로나 입던 하얀색 골지 런닝(Tank top)을 당당하게 겉옷으로 입고, 하의는 골반에 걸쳐질 듯 헐렁한 힙합 청바지를 매치했다.
상체는 타이트하게 근육을 드러내고 하체는 루즈하게 연출하는 이 실루엣은 듀스(DEUX)나 유승준 같은 교포 출신 가수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졌다.
여기에 볼캡을 푹 눌러쓰거나 두건을 두르는 것까지, 흑인 음악 문화에 기반한 이 스타일은 당시 ‘압구정 킹카’의 상징이었다.
여성들의 패션은 더욱 과감하고 서구적이었다. 어깨가 완전히 드러나는 얇은 ‘끈 나시(Spaghetti strap)’는 보수적인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압구정 언니들에게는 쿨함 그 자체였다.
여기에 배꼽이 보이는 크롭 티셔츠를 입고, 허리에는 투박할 정도로 굵은 가죽 통 벨트를 매는 것이 국룰이었다.
모자 또한 필수 아이템이었는데, 벙거지 모자(버킷햇)나 빵모자(뉴스보이 캡)를 푹 눌러써 시크함을 더했다.
이는 미국의 TLC나 자넷 잭슨 같은 팝 스타들의 스타일을 한국적으로 소화한 것으로, 기존의 단아한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신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신세대의 자신감이 투영된 룩이었다.
4.2.2.보세가 명품을 이기던 시절
결국 90년대 압구정 패션의 핵심은 ‘브랜드 로고’가 아닌 ‘스타일’ 그 자체였다.
유학파들이 들여오고 보세 가게들이 확산시킨 이 흐름은, 옷의 가격표보다 옷을 입는 태도(Attitude)가 중요함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끈 나시 하나를 입어도 당당한 눈빛, 런닝 셔츠만 걸쳐도 뿜어져 나오는 힙합 바이브. 그것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맛본 문화적 다양성이자 자유의 맛이었다.
결국 90년대의 이 모든 ‘기괴한’ 패션—머리 위 선글라스, 과도한 액세서리, 배꼽티—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서구 문화의 유입 속에서 터져 나온 ‘욕망의 카니발’이었다.
겉으로는 서양의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동대문표 짝퉁을 입고서라도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고 싶어 했던 대중의 열망이 투영된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쳐 거품이 꺼지기 직전, 한국 사회가 누렸던 가장 화려하고도 촌스러운, 그래서 더 인간적인 허세의 시대가 바로 90년대였다.
5.2000년대 태닝의 유행
백옥 피부의 반란, 인공 태닝과 구릿빛 피부 “하얀 피부는 촌스럽다.” 이효리 신드롬과 함께 섹시함이 최고의 가치로 떠올랐다.
미백에 목숨 걸던 한국인들이 돈을 내고 기계에 들어가 피부를 검게 태우기 시작했다.
일부러 태운 까만 피부에 하얀 입술 화장을 곁들이는, 지금 보면 다소 난해한 교포 화장이 거리를 점령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미의 기준이 ‘귀티(하얀 피부)’에서 ‘부티(건강한 피부)’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 여가를 즐기고 스포츠를 하며 자신을 가꾸는 것이 새로운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이승연, 이본, 김희선 등은 이러한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들의 까만 피부는 뙤약볕 아래서 일해서 탄 것이 아니라, 선베드나 휴양지에서 태운 ‘관리된 피부’라는 인식을 주었고, 이것이 2000년대 이효리로 이어지는 ‘섹시 아이콘’ 계보의 전조가 되었다.
특히 수영장 문화의 확산은 태닝 유행의 강력한 기폭제였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을 강타한 ‘몸짱’ 열풍은 헬스장뿐만 아니라 야외 수영장을 거대한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한강 수영장이나 특급 호텔 야외 수영장은 단순히 수영을 하는 곳이 아니라, 겨우내 만든 근육을 과시하는 ‘런웨이’였다.
하얀 피부는 근육의 선명도(데피니션)를 뭉개버리지만, 태닝 된 구릿빛 피부는 근육의 굴곡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남성들에게 태닝은 근육을 돋보이게 하는 화장이었고, 여성들에게는 탄력 있는 바디라인을 강조하는 수단이었다.
6.2010년대 잠옷 바람의 외출
2010년대 잠옷 바람의 외출, 수면 바지와 어그 부츠 집에서 입는 극세사 수면 바지에 털 뭉치 같은 어그 부츠를 신고 편의점과 독서실을 누볐다. ‘편안함’이 ‘격식’을 이기기 시작한 시점. 공공장소와 안방의 경계가 무너지는 전조증상이었다.
임수정과 카메론 디아즈, 어그(UGG)의 화려한 데뷔
어그 부츠의 유행은 2000년대 중반, 패션 고관여층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서양에서는 카메론 디아즈,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한여름에도 미니스커트나 핫팬츠에 어그 부츠를 신는 ‘믹스 매치’ 룩을 선보이며 쿨함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결정적이었다. 여주인공 임수정이 무지개색 니트에 어그 부츠를 신고 나오면서, 이 투박한 양털 신발은 단숨에 ‘사랑스러움’과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그는 비싸고 관리하기 힘든, 멋쟁이들의 전유물이었다.
6.1.패션에서 생존으로, 의미의 변질
그러나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어그 부츠의 위상은 급격히 달라진다.
초기의 ‘보헤미안 시크’ 감성은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방한화’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저가형 모조품(소위 ‘짝퉁’)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한국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기에 이만한 아이템이 없다는 실용성이 부각되었다.
이때부터 어그는 미니스커트가 아닌 트레이닝복, 심지어 교복 치마 아래 신는 ‘전천후 전투화’가 되었다.
2010년대 대학가와 고시촌을 점령한 ‘수면 바지+어그 부츠’ 조합은 ‘편안함에 대한 극단적 추구’가 낳은 기이한 결과물이다.
첫째, 소재의 동질성이다. 극세사 수면 바지의 보들보들한 질감과 양털 부츠의 포근함은 촉각적으로 완벽한 세트였다.
둘째, 영역의 파괴다. 집 안에서 입는 잠옷(수면 바지)과 집 밖에서 신는 신발(어그)의 경계가 무너졌다.
이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밤샘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남의 시선보다 내 몸의 따뜻함이 먼저”라는 실리주의가 작용한 결과다.
마치 헐리우드 스타들이 집 앞 편의점에 갈 때 대충 걸치고 나가는 파파라치 컷을 한국적으로(혹은 생계형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가장 기괴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선택
결국 패션 피플들이 신던 헐리우드 아이템이 한국 대학생들의 ‘기말고사 룩’ 혹은 ‘독서실 룩’으로 정착한 과정은, 패션이 대중화되면서 본래의 ‘멋’은 휘발되고 ‘기능’만 남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그 부츠는 발이 붓고 혈액순환이 안 되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완벽한 슬리퍼였고, 수면 바지는 그 기능을 극대화해 주는 보조 장치였다. 카메론 디아즈가 보면 경악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2010년대 겨울 거리에서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따뜻한 조합은 존재하지 않았다.
7. 2020년대: 레깅스와 헤어롤
지난 몇 년간 서양에서는 셀러브리티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는 일반 대중을 중심으로 몸에 딱 붙는 레깅스 패션이 거리를 점령했다.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이 유행의 근원지를 찾는다면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인 켄달 제너와 지지 하디드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단순히 편하다는 이유로, 혹은 왜곡된 미의식을 바탕으로 레깅스를 고집하던 시절은 저물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회복한 지금, 여성들의 패션 또한 더욱 갖춰 입는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궤도로 복귀해야 할 시점이다.
앞머리 사수 대작전, 헤어롤과 레깅스 지하철, 카페, 회사 사무실 가리지 않고 앞머리에 거대한 헤어롤을 말고 있는 기이한 풍경. 여기에 하체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레깅스까지 더해졌다.
“남 시선은 신경 안 써”라면서 가장 시선이 가는 차림을 하는, 보여주기 식 쿨함의 정점.
7.1.켄달과 지지가 쏘아 올린 공, 그리고 일상복의 오해
레깅스 열풍은 켄달 제너와 지지 하디드가 1980년대 복고풍 트렌드를 운동복에 접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운동을 위해 입었던 옷이 파파라치 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를 본 대중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 자체를 허물기 시작했다.
마치 연예인이 샵에서 헤어롤을 말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에 매료되어, 일반인들이 외출 시 앞머리에 헤어롤을 달고 다니는 기현상과 흡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등산복, 심지어 데이트 룩으로까지 번지며 ‘국민 패션템’이 되었다.
7.2.민망함과 편안함 사이, 잃어버린 미적 기준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이 유행은 지속되기 어렵다.
패션의 본질은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데 있다.
그러나 레깅스는 적나라한 실루엣으로 인해 다리 라인의 단점을 오히려 극대화한다.
착용자는 편할지 몰라도 보는 이에게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민망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과거 에어로빅 의상은 철저히 실내용이었고, 요가복 또한 본래 통이 넓은 스타일이었다.
이것이 필라테스와 결합하며 타이트해졌고, 셀럽들의 영향으로 헬스장을 탈출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켄달 제너 같은 타고난 비율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Y존의 부각이나 엉덩이 라인의 노출은 스타일리시함보다 부담감을 먼저 안겨준다.
과거 클라라의 시구 패션이 큰 파장을 일으켰던 때를 떠올려보자.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중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당시 쏟아졌던 비난과 논란은 레깅스가 가진 속옷과 겉옷의 모호한 경계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레깅스 위에 스커트나 롱 티셔츠를 매치해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상식이자 멋이었다.
최소한의 갖춤을 통해 여성미와 예의를 동시에 챙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레깅스 단독 착용은 통풍과 위생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패션이 가져야 할 긴장감과 미적 완결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8.역대급 기괴한 패션 아이템 헤어롤
이 기이한 ‘길거리 헤어롤’ 패션의 시발점은 단연 EXID의 하니라고 볼 수 있다.
2015년경,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과 각종 리얼리티 쇼에서 이동 중이나 대기 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등장했다.
이전까지 헤어롤은 화장실이나 집 안방, 혹은 미용실 같은 ‘백스테이지(Backstage)’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톱스타인 하니가 보여준 그 꾸밈없고 당당한 모습은, 1020 여성들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도구”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실수로 달고 나온 것이 아니라, 더 예뻐지기 위한 당당한 준비 과정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 유행이 한국에서 유독 폭발한 이유는 한국 여성들이 선호하는 헤어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이마가 살짝 보이는 ‘시스루 뱅’이다. 숱을 적게 내어 가볍게 연출하는 이 앞머리는 청순해 보이지만, 습기나 땀에 매우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볼륨(일명 ‘뽕’)이 죽어버려 축 처진 미역처럼 변하기 십상이다.
고온 다습한 한국의 기후, 그리고 긴 통학 및 출퇴근 시간 속에서 앞머리의 볼륨을 약속 장소 도착 직전까지 사수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 바로 ‘이동 중 헤어롤’이다.
8.1.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실용주의’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이것은, 기성세대의 눈에는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헤어롤을 말고 있는 모습이 “예의 없다”, “칠칠맞다”, 심지어 “기괴하다”라고 비칠 수 있다.
“집에서 하고 나와야지 왜 밖에서 저러나”라는 것이 어른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젠지(Z세대)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지금 지하철 안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잠시 후 만날 내 친구나 남자친구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다.
이동 시간은 그저 ‘준비 시간’의 연장일 뿐이며,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 앞머리의 볼륨을 포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8.2.외국인도 놀라는 K-뷰티의 미스터리 헤어롤의 실체
이제 앞머리 헤어롤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K-풍경’ 중 하나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 등 외신에서도 한국의 이 독특한 거리 문화를 집중 조명했을 정도다.
그들은 이를 공공장소와 사적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상이자, 외모 관리에 대한 강박과 효율성이 결합한 한국 특유의 문화로 해석한다.
하니가 무심코 보여준 털털한 모습이, 습한 날씨와 ‘시스루 뱅’ 유행, 그리고 남 눈치 안 보는 MZ세대의 성향과 맞물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헤어롤 패션’을 완성한 셈이다.
EXID 하니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동하는 차량 안, 즉 ‘사적인 대기 공간’에서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중, 특히 1020 세대는 이 맥락을 “예쁜 연예인도 저런다”는 표면적인 행위로만 받아들여, 공공장소인 지하철과 카페, 길거리로 무비판적으로 확장했다.
이는 미디어가 보여준 ‘쿨함’을 TPO(시간, 장소,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행위’ 그 자체로만 모방한 결과다.
이를 단순히 멍청함이라기보다는, 미디어 정보를 맥락 없이 소비하는 세대적 특성이 반영된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8.2.1.현실의 유예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현실의 유예’다. 기성세대는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가 사회적 활동의 시작이다.
그러나 헤어롤을 말고 다니는 이들에게 지하철이나 버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일 뿐, 사회적 공간이 아니다.
그들에게 진짜 현실(Real World)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거나, ‘인생샷’을 찍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전까지의 시간은 컴퓨터의 ‘로딩 화면’이나 연극의 ‘무대 뒤(Backstage)’와 같다.
무대 뒤에서 분장을 고치는 건 흉이 아니라는 논리다. 즉, 남들이 보든 말든 나는 지금 ‘준비 중’이니 신경 끄라는 무언의 선언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남자친구 앞에서도 헤어롤을 마는 심리는 ‘비주얼 권력의 이동’으로 설명된다. 과거의 데이트는 눈앞의 상대방과의 교감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트 중 찍어서 SNS에 올릴 ‘사진’이 더 중요한 시대다.
습기 때문에 앞머리가 축 처진 상태로 사진이 찍히는 것은 그들에게 ‘실패한 데이트’다. 밥을 먹거나 대화하는 동안 잠깐 헤어롤을 말아두는 것은, 잠시 후 찍을 사진(영원히 남을 결과물)을 위해 현재의 미관을 잠시 희생하는 철저한 ‘결과 중심주의’적 행동이다. 또한, 남자친구 앞에서 이를 보인다는 것은 “너는 내 꾸밈 노동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친밀감의 표시이거나, 반대로 상대방을 긴장해야 할 타인이 아닌 편한 액세서리 정도로 여기는 심리일 수도 있다.
8.2.2.’디지털 네이티브’와 ‘효율성 중독’
이러한 행동을 하는 주 계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Z세대 여성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자신을 전시하는 데 익숙하다.
이들에게 ‘예의’나 ‘격식’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내 앞머리의 볼륨이 살아있느냐 하는 ‘구체적인 효용’이다.
이를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비싼 돈 들여 한 머리가 이동 중에 망가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비효율적이고 센스 없는’ 행동이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만족과 결과물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두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한 형태다.
결론적으로 이는 ‘센스가 없다’는 기성세대의 시각과, ‘이게 왜 문제냐’는 신세대의 시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과거에는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고치는 것조차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헤어롤 패션은 그 허용 범위가 머리카락까지 확장된 것이다.
다만, 격식을 갖춰야 할 소개팅 자리나 공적인 장소에서조차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회화의 부재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무례함’이 맞다.
하지만 단순한 친구와의 만남이나 일상적인 데이트라면, 이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생존형 뷰티 루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9.다시 바지의 시대로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이제 헤어롤뿐만 아니라 팬데믹 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마스크 앤 레깅스’ 조합은 놓아줄 때가 되었다.
패션계는 다시 박시한 데님과 세련된 스키니 진의 유행을 예고하고 있다.
벙벙한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매치해 쿨한 무드를 연출하거나, 딱 붙는 스키니 팬츠에 힐을 신어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
레깅스는 본래의 목적대로 실내 운동용으로 남겨두자.
아무리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시대라지만, 굳이 자신의 체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스타일의 품격을 낮출 필요는 없다. 아름다움은 편안함 속에 숨은 약간의 긴장감에서 나온다.
10. 2020년대 이후
이제 과거처럼 엉덩이와 다리 라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타이트한 레깅스만 입고 번화가를 활보하는 유행은 확실히 끝물에 접어 들었다.
구체적인 2024-2025년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젠지(Gen Z)는 ‘스키니’를 거부한다. 현재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1020 세대는 몸을 조이는 옷보다 편안하고 힙한 실루엣을 선호한다. 소위 ‘Y2K 패션’과 ‘고프코어 룩’이 유행하면서, 레깅스 대신 파라슈트 팬츠(낙하산 바지), 카고 바지, 와이드 데님처럼 통이 넓고 헐렁한 바지가 거리를 점령했다. 이제 꽉 끼는 레깅스는 힙하다기보다 약간은 “유행 지난”, 혹은 “운동할 때만 입는” 옷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TPO의 분리: 운동복은 헬스장에서만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는 ‘원마일 웨어(집 근처 1마일 반경에서 입는 옷)’가 유행하며 레깅스가 일상복을 대체했지만, 엔데믹 이후에는 다시 ‘꾸꾸(꾸미고 꾸민)’ 트렌드가 돌아왔다.
이제 성수동이나 홍대 같은 핫플레이스에서 레깅스만 입고 다니는 사람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운동할 때는 입더라도, 약속 장소에 갈 때는 갈아입거나 위에 무언가를 걸치는 추세이다.
11.기괴한 유행 뒤에 숨겨진 욕망의 심리학
과거의 유행을 돌아보면 “대체 왜 저런 흉측한 것을 입었을까” 싶지만, 당대에는 그것이 가장 힙하고 세련된 스타일이었다.
이는 인간의 미적 기준이 생물학적으로 변해서가 아니다.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 조각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결핍과 욕망이 투영된 거울이기 때문이다.
기괴해 보이는 유행 뒤에는 대중 심리를 관통하는 몇 가지 강력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모든 청년 문화의 시작은 ‘아버지 죽이기(Oedipus complex)’와 맞닿아 있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가 구축한 질서와 미적 기준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19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숨 막히는 통제 사회에 대한 반발이었고, 1990년대 바닥을 쓸고 다니던 힙합 바지는 단정함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조롱이었다.
부모 세대가 딱 붙는 옷을 입으면 자식 세대는 헐렁한 옷을 입고, 부모가 화려함을 추구하면 자식은 촌스러움을 선택한다.
기괴함은 곧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라고 외치는 시각적 시위다.
11.1.소속감과 동조 심리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 시작한 패션은, 결국 ‘남들과 똑같이’ 입음으로써 완성된다.
시대를 휩쓴 기묘한 유행 패션 이를 심리학에서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 한다. 인간은 무리에서 도태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있다. 2010년대 등골 브레이커라 불린 노스페이스 패딩이나, 2020년대의 레깅스 열풍은 “이것을 입지 않으면 우리 무리에 낄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다.
개성을 추구하지만 결국 유행이라는 제복을 입고 안도감을 느끼는 모순, 이것이 거리에 클론(Clone)을 양산하는 원동력이다.
11.2.시대정신(Zeitgeist)의 시각화
패션은 그 시대의 경제와 사회 분위기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
1980년대의 과장된 어깨 뽕과 사자 머리는 고도성장기의 자신감과 여성의 사회 진출 욕구를 과시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반면, 2000년대의 인공 태닝과 노출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건강미와 성적 매력을 자본화하려던 시도였다.
최근 젠지 세대가 ‘거지 룩’이라 불리는 낡고 해진 옷을 입거나 잠옷 같은 패션을 추구하는 것은, 저성장과 미래 불확실성 속에서 격식 차리기를 포기하고 ‘나의 편안함’을 최우선 가치로 둔 생존 본능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스타일도 10년이 지나면 진부해진다. 스키니 진이 10년 넘게 세상을 지배하자, 대중은 피로감을 느꼈고 정반대인 와이드 팬츠에서 신선함을 찾았다.
미적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시계추처럼 양극단을 오간다.
극도로 조이던 것이 유행하면 다음은 극도로 헐렁한 것이 오고, 화려함이 정점을 찍으면 미니멀리즘이 도래한다.
우리가 보기에 기괴한 패션은 그 직전 시대의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등장한 과도기적 발악이거나, 새로움이라는 강박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