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에포크 시대 최초의 대중 스타 클레오 드 메로데

최초의 대중 스타 클레오 드 메로데 이야기

‘벨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는 아름다운 시절, 파리의 밤을 수놓았던 수많은 별 중에서도 가장 찬란했던 인물을 꼽자면 단연 클레오 드 메로데(Cléo de Mérode)다.

클레오 드 메로데

그녀는 단순히 미모가 뛰어난 무용수를 넘어, 사진 엽서와 대중 매체의 태동기를 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최초의 근대적 셀러브리티’로 평가받는다.

1.예술가 가문의 피와 파리에서의 탄생

클레오 드 메로데(본명 클레오파트라 다이앤 드 메로데)는 1875년 9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풍경화가 칼 폰 메로데였고, 어머니는 빈 출신의 귀족 가문 여성이었다.

당시 부모는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녀의 어머니는 보수적인 빈 사회의 시선을 피해 파리로 건너와 클레오를 낳았다.

비록 혼외자라는 꼬리표와 타국 생활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 있었지만, 메로데 가문이라는 배경과 어머니의 헌신, 그리고 클레오 자신이 지닌 천부적인 매력 덕분에 이들은 파리 사회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클레오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적 재능과 미모는 일찍부터 빛을 발했다.

2.파리 오페라좌의 발레리나

클레오는 7세에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무용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불과 11세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타고난 우아함과 기량으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캄보디아 춤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이후 기존 발레의 틀을 깬 창작 무용을 발표하며 예술가로서도 인정받았다.

그녀는 50대 초반인 1924년 은퇴할 때까지 무대 위에서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3.시대를 앞서간 스타일 아이콘

클레오 드 메로데를 전설로 만든 것은 춤 실력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고전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미모는 당대 대중매체의 발달과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그녀가 16세 무렵부터 고수한, 가르마를 타고 양쪽 귀를 덮으며 뒤로 묶은 ‘시뇽 스타일(Chignon)’은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한 매력으로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유행이 되었다.

사진과 엽서 산업이 막 태동하던 시기, 그녀의 얼굴이 담긴 엽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현대적 관점에서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세련된 그녀의 이목구비는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그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 최초의 사진 모델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3.1. 시뇽 헤어 스타일

시뇽(Chignon)은 프랑스어 ‘chignon du cou(목덜미)’에서 유래한 단어로, 머리카락을 모아 목덜미 부근에서 틀어 올리거나 묶은 헤어 스타일을 통칭한다.

한국의 ‘쪽진 머리’와 유사한 형태를 띠며, 서양 복식사에서는 여성의 우아함과 성숙미를 상징하는 가장 고전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스타일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테네 여성들은 상아나 금으로 만든 핀을 사용해 머리를 낮게 고정했는데, 이는 활동성을 보장하면서도 여성의 목 선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이후 로마 시대를 거쳐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거대한 가발과 장식으로 화려해졌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며 다시 자연스럽고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

4.예술가의 뮤즈와 스캔들의 중심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 또한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조반니 볼디니 등 거장들이 그녀를 모델로 삼아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명성에는 언제나 구설수가 따랐다. 가장 유명한 스캔들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와의 염문설이었다.

당시 대중은 국왕을 ‘클레오폴드’라고 비꼬아 부를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를 기정사실화했으나, 클레오는 이를 평생 부정했다.

또 다른 논란은 조각가 알렉상드르 팔귀에르의 작품 ‘무용수(La Danseuse)’와 관련되어 있다.

살롱에 전시된 이 누드 조각상이 클레오를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얼굴 모델만 했을 뿐 누드 포즈를 취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며 소송까지 불사했으나, 대중은 진실보다 스캔들 자체를 소비했다. 이는 그녀가 평생 짊어져야 했던 오해 중 하나였다.

5.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다

수많은 남성의 구애와 떠들썩한 소문 속에서도 클레오 드 메로데는 평생 독신을 고수했다.

은퇴 후 그녀는 파리에서 발레를 가르치며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그녀는 1966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예술과 삶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벨에포크라는 화려한 시대의 상징이자, 미디어와 대중이 만들어낸 최초의 아이콘이었던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가장 매혹적인 예술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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