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7세를 소유한 여인들의 이야기

에드워드 7세의 여인들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관을 비웃기라도 하듯 런던의 밤을 수놓았던 에드워드 7세와 그의 연인들은 단순한 스캔들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권력 게임을 완성했다.

국왕은 여성을 통해 무료한 왕실의 공기를 환기했고 정부들은 국왕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던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에드워드 7세의 여인들

에드워드 7세가 수많은 당대 최고의 여성들을 사로잡았던 비결을 단지 왕관의 무게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의 인간적 매력이 너무나 다채롭고 입체적이었다.

그는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엄격하고 절제된 통치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인생의 즐거움을 향유할 줄 아는 탐미주의자였으며 사람의 마음을 여는 섬세한 기술을 가진 타고난 로맨티스트였다.

1. 에드워드 7세 벨 에포크의 설계자이자 스타일 아이콘

에드워드 7세는 현대 남성 복식의 기틀을 마련한 당대 최고의 패셔니스타였다.

셔츠 소매의 커프스나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리는 턴업 스타일 그리고 턱시도의 대중화는 모두 그의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단순히 비싼 옷을 입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체형을 보완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법을 알았다.

식사 후 배가 불러 조끼의 맨 아래 단추를 풀어놓았던 그의 습관이 오늘날 정장 에티켓으로 굳어질 만큼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여성들에게 그는 권력자이기 이전에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가장 세련된 파트너였다.

1.2.여성을 존중하는 지적인 경청자

그가 정부들에게 사랑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을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지적인 대화 상대로 대우했다는 점이다.

앨리스 케플이나 데이지 워릭 같은 여성들은 국왕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에드워드 7세는 여성의 조언을 경청했고 그들의 지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남성들이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가두려 했던 것과 달리 그는 여성들의 야망을 이해하고 후원하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러한 태도는 당대 진취적인 여성들에게 왕이라는 지위보다 더 강력한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다.

1.3.권위를 내려놓은 인간적인 따뜻함

그는 왕실의 딱딱한 의전보다 파리의 카페나 경마장 그리고 사교 파티장의 활기를 사랑했다.

격식을 따지기보다 상대방의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 감각을 지녔으며 자신을 향한 농담도 너그럽게 넘길 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

맥신 엘리엇이나 사라 베르나르 같은 예술가들이 그와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가진 특유의 소탈함 덕분이었다.

그는 상대방이 누구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화법의 소유자였고 이러한 ‘다정한 권력자’의 모습은 그 어떤 보석보다 강력하게 여심을 흔들었다.

1.4.결핍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로맨티스트

강력한 어머니 밑에서 오랜 시간 황태자로 머물며 억눌려 지내야 했던 그의 배경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보호 본능과 모성애를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는 평생 사랑과 인정을 갈구했고 그 갈증을 수많은 정부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채우려 했다.

이러한 그의 인간적인 결핍은 완벽해 보이는 국왕의 모습 뒤에 숨겨진 반전 매력이 되어 여성들이 그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2.Jersey Lily. 릴리 랭트리와 최초의 셀러브리티

에드워드 7세의 여인들 중 릴리 랭트리는 국왕의 첫 번째 공식 연인이자 현대적 의미의 스타성을 발명한 인물이다.

시골 목사의 딸이었던 그녀는 장식 없는 검은 드레스 한 벌로 런던 사교계를 마비시켰고 국왕은 그녀의 고전적인 미모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릴리는 국왕의 총애를 단순한 연애로 소비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브랜딩 자산으로 활용했다.

국왕은 그녀를 통해 왕실의 따분함을 해소했지만 릴리가 다른 남성들과 스캔들을 일으키자 냉정하게 그녀를 밀어냈다.

하지만 릴리는 이용당한 비운의 여인으로 남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국왕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무대 홍보에 이용해 미국 순회공연을 성공시켰고 화장품 모델로서 막대한 개런티를 챙기며 스스로 자립한 최초의 독립 여성이 되었다.

3.The Divine Sarah. 사라 베르나르와 불멸의 연기

프랑스 연극계의 신이었던 사라 베르나르는 국왕의 취향이 얼마나 폭넓고 수준 높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녀는 죽음마저 연기하는 듯한 강렬한 카리스마로 국왕을 사로잡았고 국왕은 그녀를 위해 파리까지 건너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라는 국왕을 자신의 예술을 찬미하는 가장 높은 지위의 관객으로 이용하며 자신의 국제적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 욕망을 넘어선 예술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사라는 국왕에게 프랑스의 세련된 문화를 전수했고 국왕은 그녀의 연극적인 삶을 동경하며 권태를 잊었다.

그녀에게 국왕은 이용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신의 화려한 인생 스펙터클을 완성해주는 가장 완벽한 조연에 가까웠다.

4.Venus de Milo. 맥신 엘리엇과 자본주의적 야망

맥신 엘리엇은 에드워드 7세의 여인들 중 가장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영리한 인물이었다.

조각 같은 외모로 국왕의 시선을 끈 그녀는 관계의 주도권을 절대 놓지 않았다. 그녀는 국왕의 사교 모임을 자신의 인맥을 확장하는 비즈니스 파티로 변모시켰고 국왕의 투자 조언을 귀담아들으며 자신의 재산을 불려 나갔다.

맥신은 국왕의 애정에 매달리는 대신 그가 제공하는 기회들을 낚아채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극장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국왕은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매료되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즐기는 듯 보였다.

결국 맥신은 국왕 사후에도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거물 사업가로 성장하며 사랑보다 강력한 자본의 힘을 몸소 증명해냈다.

5.Daisy Warwick. 데이지 워릭과 위험한 정치 게임

귀족 출신의 데이지 워릭은 국왕의 총애를 가장 위험하게 휘둘렀던 인물이다.

그녀는 국왕의 연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사회주의 정당을 후원하고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며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국왕은 그녀의 지적인 도발에 흥미를 느꼈지만 데이지가 사치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리자 국왕과의 연애 편지를 공개하겠다며 왕실을 협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녀는 국왕을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경제적 파산을 해결할 도구로만 여겼고 결국 국왕의 분노를 사 사교계에서 매장당했다.

이용의 선을 넘은 정부가 맞이하게 되는 가장 처참한 결말을 보여준 셈이다.

6.Alice Keppel. 앨리스 케플과 최후의 승자

에드워드 7세의 여인들 중 마지막 연인 앨리스 케플은 이 모든 게임의 최종 승자였다. 그녀는 국왕의 건강과 기분을 세심하게 살피며 왕비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내조를 선보였다.

앨리스는 국왕의 권력을 이용해 남편의 승진과 자신의 투자 수익을 챙기면서도 절대로 국왕의 체면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국왕은 그녀의 품 안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을 얻었고 앨리스는 국왕의 임종까지 곁을 지키며 유산과 명예를 모두 지켜냈다.

그녀는 국왕을 가장 잘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국왕이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게 만든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7.백 년을 건너온 정부의 혈통

에드워드 7세와 여인들 중 앨리스 케플의 관계가 남긴 유산은 단순히 19세기의 화려한 스캔들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인연은 유전자의 지도를 따라 21세기 영국 왕실의 가장 높은 곳까지 이어지며 역사의 묘한 데자뷔를 선사한다.

앨리스 케플에서 카밀라 왕비로 이어지는 백 년의 서사는 정부라는 불안정한 위치를 지나 왕관이라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집요한 생존의 기록이다.

7.1.앨리스 케플과 에드워드 7세의 완벽한 파트너십

앨리스 케플은 에드워드 7세가 생애 마지막 12년 동안 가장 의지했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매력은 아름다움보다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노련한 대화술과 사교계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읽어내는 통찰력에 있었다.

앨리스는 국왕을 이용해 자신의 남편을 승진시키고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받는 영리한 비즈니스 우먼이었다.

그녀는 국왕의 분노를 잠재우고 왕비인 알렉산드라와도 기묘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왕실의 보이지 않는 실권자로 군림했다.

국왕이 임종을 맞이할 때 왕비가 직접 앨리스를 침실로 불러 작별 인사를 하게 했던 일화는 그녀가 단순한 정부를 넘어 왕의 삶에 필수적인 조각이었음을 방증한다.

7.2.카밀라 샌드와 찰스 왕세자의 운명적 조우

앨리스 케플의 증손녀인 카밀라 샌드는 1970년 윈저 성의 폴로 경기장에서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났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카밀라는 찰스에게 “내 증조할머니가 당신의 고조할아버지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아느냐”며 당당하게 접근했다. 이 도발적인 첫인사는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었고 찰스는 앨리스 케플이 에드워드 7세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정서적 안식처를 카밀라에게서 발견했다.

카밀라는 증조할머니가 가졌던 특유의 유머 감각과 지적인 여유로 왕세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될 금지된 사랑의 서막이었다.

7.3.시련의 계절과 그림자 정부의 삶

앨리스 케플이 사교계의 칭송을 받는 ‘공식 정부’로서 명예를 누렸던 것과 달리 카밀라는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시련을 겪었다.

다이애나 비라는 거대한 존재 뒤에서 그녀는 철저히 비난받는 위치에 처했다.

하지만 그녀는 앨리스가 그러했듯 침묵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찰스의 곁을 지키며 그의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는 전략은 앨리스 케플이 에드워드 7세의 변덕을 받아내며 왕실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처세술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8.승리의 대관식과 완성된 가문의 서사

결국 역사는 앨리스 케플이 차마 닿지 못했던 지점까지 나아갔다.

앨리스는 국왕 사후 사교계에서 조용히 물러나야 했지만 그녀의 후손인 카밀라는 202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찰스 3세와 함께 왕관을 썼다.

정부의 가문에서 태어나 왕비가 된 이 드라마틱한 역전극은 앨리스 케플이 뿌린 씨앗이 백 년의 세월을 견디고 피워낸 결실과도 같다.

카밀라는 증조할머니의 노련함에 인내라는 무기를 더해 왕실의 권력을 이용하는 법을 넘어 왕실 그 자체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에드워드 7세와 앨리스 케플의 초상화 옆에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의 사진을 배치한다면 이 지독하고도 흥미로운 혈연의 굴레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 서사를 통해 왕실의 로맨스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닌 계급과 권력 그리고 역사의 연속성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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