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롤 패션이 거리를 점령했던 시절이 있었다. 2020년 전후, 가장 눈에 띄었던 패션 아이템은 단연 헤어롤이다. 예뻐 보이려는 목적보다는 튀고자 하는 욕망에 가까웠던 이 트렌드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EXID 하니가 등장한다.
차 안에서 헤어롤을 만 채 잠든 털털한 모습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내 외출룩은 물론 데이트 룩으로까지 번졌다. 정작 하니 본인은 차 안에서 잠깐 한 것인데 말이다. 길거리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예뻐서가 아니라 낯설어서라는 걸 알면서도 그 스릴을 즐기는 것, 요즘 말로 하면 관종 감성이다.

하니는 이후 헤어롤을 하나의 시그니처로 굳혀 이른바 ‘헤어롤 퀸’으로 자리매김했다. 사랑스러운 매력이 전제된 하니이기에 가능한 연출이었다.
헤어롤, 단순한 유행인가 개성 표현인가
유행은 돌고 돌지만 미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다만 비율과 조화를 전제로 해야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눈에 거슬린다면 그건 개성이 아니라 튀고자 하는 본색에 가깝다. 헤어롤이 유행하던 시절, 기억 속 헤어롤은 엄마가 앞머리에 만 채 외출했다가 망신을 당했다며 웃으며 꺼내던 흑역사 소재였다.
화려한 매니큐어도 천박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가부장적 시대를 지나, 이제는 아름다움의 강박보다 개성을 앞세우는 시대가 됐다. 헤어롤 하나로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건, 그것이 단순한 머리 도구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상징물이 됐기 때문이다.
헤어롤 패션이 한국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건 2010년대 중반이지만, 실제로 여성들의 일상 외출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건 2019~2022년 사이다. SNS와 숏폼 콘텐츠의 확산이 이 트렌드를 전국으로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행이 개인의 심미안에서 시작돼 미디어가 증폭시키는 구조, 지금의 K패션 트렌드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헤어롤을 패션 아이템으로 소화하는 법
헤어롤을 멋지게 소화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피부 결이 곱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 반쯤 정돈된 듯한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과 함께일 때 빛을 발한다. 지나치게 정돈된 풀 메이크업과 헤어롤의 조합은 어색하고, 반대로 너무 노메이크업이면 의도가 읽히지 않는다.
옷차림과의 조화도 중요하다. 오버사이즈 티셔츠나 루즈한 데님, 편한 슬리퍼와 함께할 때 헤어롤의 ‘안 꾸민 듯 꾸민’ 무드가 완성된다. 포멀한 의상이나 정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헤어롤 패션의 핵심은 캐주얼한 무심함이기 때문이다.
90년대 vs 2010년대, 패션 아이템 비교
그 시대상과는 별개로, 90년대와 2010년대 이후의 패션 아이템을 비교해보는 건 꽤 흥미롭다. 2010년대 하니가 불씨를 댕긴 헤어롤이 2020년대까지 이어진 트렌드라면, 90년대의 시그니처 아이템은 단연 선글라스였다. 정확히는 쓰는 게 아니라 머리 위에 걸치는 용도로.
90년대는 거리에 멋쟁이가 넘쳤다. 압구정 보세 옷가게를 번질나게 드나들며 쇼핑하던 그 시절, 꾸미는 건 개인 취향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예의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여름이면 피부를 까맣게 태우고 탱크탑과 배꼽티를 입었고, 각선미와 가슴 골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짙은 화장에 다양한 액세서리로 온몸을 코디하는 토탈 코디네이션이 미덕이었다. 지금처럼 하나의 명품 아이템에 몰투자하는 방식과는 결이 달랐다.
90년대 필수 패션 아이템, 선글라스
그 시절 선글라스는 멋쟁이의 필수 패션 아이템이었다. 길거리에 저렴한 선글라스도 있었지만 그건 일회성 멋내기에 불과했고, 진짜 소장용은 망설임 없이 명품으로 샀다. 착용보다는 머리 위에 걸치거나 상의 네크라인에 걸치는 방식으로 패션 포인트를 줬다. 90년대 스타들의 사진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머리 위에 선글라스가 걸쳐져 있다.
지금은 머리 위 선글라스가 중년의 패션으로 분류되는 분위기지만, 헤어롤을 앞머리에 두르고 외출하는 것보다는 훨씬 세련된 그림이긴 하다. 물론 모든 패션 아이템은 파릇한 젊은 시절에 빛나는 법. 젊을 때는 웬만한 시도가 다 개성으로 읽힌다.
머리 위 선글라스 vs 앞머리 헤어롤 — 두 아이템이 담은 시대의 미의식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걸치는 행위와 앞머리에 헤어롤을 두르는 행위.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닮아 있다. 둘 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제스처다. 90년대 선글라스 패션이 “나는 바빠서 막 걸쳤어”라는 여유로움의 코드였다면, 2020년대 헤어롤 패션은 “나는 안 꾸민 게 꾸민 거야”라는 반미학의 선언에 가깝다.
두 아이템 모두 본래 목적 이외의 방식으로 착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선글라스는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고, 헤어롤은 머리를 세팅하기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벗어나 패션 아이템이 된 순간, 이 물건들은 각자의 시대 감성을 담는 그릇이 됐다.
세대를 가르는 패션 아이템, 그 법칙
특정 패션 아이템이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건 단순히 유행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템을 어떤 맥락에서, 누가 먼저 소화했느냐가 관건이다. 90년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걸친 건 압구정 오렌지족들이었고, 2010년대 헤어롤을 외출 아이템으로 만든 건 하니라는 특정 스타였다.
두 경우 모두 하나의 아이콘이 촉매가 됐다. 대중은 그 아이콘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그 세계 안에 위치시키려 했다. 패션 트렌드란 결국, 내가 어떤 시대에 속하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언어인 셈이다.
지금 20대가 헤어롤을 쓴다면 그건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다는 레트로 감성의 표현일 수 있다. 반면 40대가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걸친다면, 그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향수에 가깝다. 패션 아이템은 나이와 함께 의미가 달라진다. 다만 나중에 이불킥할 일을 줄이려면, 예쁘거나 매력적인 전제 위에서 꾸미는 편이 낫다.
자주 묻는 질문 (FAQ)
헤어롤 패션은 언제부터 유행했나요?
EXID 하니가 차 안에서 헤어롤을 한 모습이 화제가 되며 2010년대 중반 시작됐습니다. 본격적인 거리 패션으로 확산된 건 2019~2022년 사이로, SNS와 숏폼 콘텐츠 붐과 맞물렸습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9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으로는 머리 위에 걸치는 선글라스, 배꼽티, 하이웨스트 청바지, 레이어드 액세서리를 활용한 토탈 코디네이션이 있습니다. 특히 선글라스를 착용이 아닌 머리에 걸치는 방식이 그 시절 스타일의 상징이었습니다.
헤어롤을 예쁘게 연출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깨끗한 피부와 내추럴 메이크업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오버사이즈 티셔츠, 루즈한 데님 같은 캐주얼한 옷차림과 매치할 때 ‘안 꾸민 듯 꾸민’ 무드가 가장 잘 살아납니다.


